
기도의 자리에서 졸음에 무너졌던 경험, 이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한 번쯤은 겪어본 기억일 것입니다. 분명 기도하겠다는 결심으로 무릎을 꿇었건만, 어느새 머리는 무겁고 눈꺼풀은 내려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한 것 같은 허탈감만 남기는 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주님 앞에 도무지 면목이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잠든 자신을 자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흔한 경험 속에 감추어진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기도하시던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십자가를 앞둔 그 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물으셨습니다(막 14:37). 그 물음은 단순한 책망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자리에서 육신에 무너지는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슬픔 어린 호소였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날 하루의 분주함과 긴장감으로 육체가 너무나도 피곤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는 말씀은 곧, 모든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기도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영적인 노동이며, 자신의 육을 꺾는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훈련이자 습관입니다. 지속적인 기도는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시간을 구별해 내고, 졸음을 이기며,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바로 기도자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지 않는다면, 어느새 기도의 끈은 끊어지고, 기도는 습관이 아닌 '가끔 하는 의식'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졸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피곤에서 오는 단순한 생리적 반응과는 결이 전혀 다른, 성령의 임재 가운데서 경험하는 ‘영적 졸음’입니다. 욥기 33장에서 엘리후는 말합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 하나님이 꿈이나 환상으로 그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신다”고.(욥 33:15~16)
이 말씀은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바로 그 무방비의 상태에서 그의 귀를 여시고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졸음은 단지 피로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낮에 우리의 이성과 감정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동안이 아닌, 우리가 가장 낮아지고 이성의 통제가 느슨해지는 순간에 말씀하시기를 즐겨 하십니다.
사도행전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고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 환상을 봅니다(행 10장). 바울 역시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비몽사몽간에’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행 22:17).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때에도 깊은 잠과 흑암이 그를 덮었고, 그 상태에서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십니다(창 15:12~14). 이 모든 장면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오직 은혜로 임하시는 때가 바로 ‘비몽사몽’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졸음은 단순한 생리적 피로와 다릅니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기도 생활이 꾸준히 쌓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상의 중심이 되며, 육신의 습성을 절제하고 영을 훈련시키는 삶이 지속될 때, 성령께서는 그런 이에게 임하십니다. 기도하다 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머리는 아래로 떨어지며, 생각은 멍해집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심지어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집회에서 성령의 임재 가운데 쓰러지고, 잠든 것 같은 상태로 들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예전엔 흔치 않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집회에서 이것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넘어지는 경험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쓰러진 그 자리에서 임재에 머물고,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을 들으려는 간절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임재는 결코 ‘효과’가 아니라 ‘초대’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졸음이 자주 온다면, 그것이 단순한 피로인지, 혹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영적 ‘현관’인지 점검해보십시오. 평소 삶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에 힘쓰며, 자투리 시간도 아끼는 기도의 사람이라면, 그 졸음은 어쩌면 하나님이 다가오시는 사인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배만 시작하면 졸고, 기도하려고 하면 생각이 흩어지고 잡념이 들며, 기도만 끝나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면 그것은 육신에 지배된 삶의 반증입니다.
기도는 힘이 듭니다. 육신을 죽이는 일이며, 영을 살리는 일입니다. 졸음을 이기기 위한 의지적인 싸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졸음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졸음 가운데 문득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들리고, 환상을 보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기도 중에 오는 졸음, 그것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졸음일 수도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여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이 얼마나 하나님을 향해 구별되어 있는가, 내 기도 생활이 얼마나 꾸준하고 지속적인가, 나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졸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당신을 망치는 도둑이 되지 않도록, 기도의 자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 졸음 속에서 하늘이 열리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지금까지의 모든 졸음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주여, 기도할 때 임하소서. 졸음 속에서도 나를 찾아오소서. 내가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오늘도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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