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16:22~24)
많은 이들이 기도를 어떤 신비한 도구로 오해합니다. 필요를 채우기 위한 '마법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기도는, 실상 인간 중심적 욕망이 반영된 형태로 전락해버리곤 합니다. “구하면 주신다”는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하나님을 마치 알라딘의 램프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꺾어 내 욕망을 관철시키는 통로가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사탄이 우리 안에 교묘히 심어놓은 신앙의 왜곡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필요 충족자’로 축소시킵니다. 그분의 전능하심과 주권, 그리고 창조주로서의 위엄은 흐릿해지고, 우리는 점점 그분이 누구신지조차 모르는 채 '내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이, 스스로 만든 신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으시는 분이고, 우주의 질서를 직접 다스리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감히 ‘이 일이 옳으니 바꿔달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춰가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배우고, 하나님의 시선을 닮아가며, 마침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되는 은혜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을 마무리에 붙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과 목적 안에서 구하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예수님의 정체성과 성품, 사역의 방향 속에서 구하는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응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 은혜의 수단을 주셨습니다. 말씀, 성례, 그리고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일을 우리로 알게 하시고, 그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통로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을 우리가 '그분의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애써 기도하고 인내할 때, 그 결과가 이루어지면 우리는 감히 스스로를 자랑하지 못합니다. 무릎 꿇고 손든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정확히 보게 되며, 진정한 찬양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 우리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지요.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어떤 모습입니까? 여전히 ‘필요 목록’ 중심은 아닌가요?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신 것들을 반복하여 읊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하고 끝내고 있지는 않은가요?
사도 바울의 기도를 보십시오. 그는 감옥에서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더 알게 하소서”, “그 뜻을 깨닫게 하소서”, “지혜와 총명을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그는 기도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참된 기도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자녀의 특권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합니다. 기도의 본질은 바로 이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 그 자체가, 이미 응답이고 은혜이며, 기도의 목적이 이루어진 순간입니다.
기도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바랐던 문제의 해결보다, 하나님 자신이 내 기도의 가장 크고 영광스러운 응답이었음을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을 신에게 쏟아붓고 돌아가는 데 그치곤 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이 기도의 여정에서 우리는 점차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며, 마침내 그 기쁨이 충만한 자리, 곧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무릎을 꿇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의 뜻이 이뤄지기를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복하기 위해서.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내가 변화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기도라는 은혜의 깊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말씀은 내 기쁨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예수님의 초대입니다. 기도는 그 초대에 응답하는, 자녀의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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