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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속으로

기드온의 에봇 사건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9.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사사기 8:27)

한때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 받았던 기드온. 그가 만든 에봇 하나가 그와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음란하게 그것을 섬겼다고 성경은 고발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우상숭배의 기록이 아닙니다. 인간 신앙의 본질적 문제,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보이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우리의 근본적인 죄성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에봇은 본래 하나님이 명하신 제사장의 복장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8장에 따르면 에봇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응답을 받기 위한 거룩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만든 에봇은 그런 거룩한 의도를 담지 못했습니다. 그는 미디안 전쟁에서 승리한 후,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탈취한 금으로 에봇을 만들고 자기 성읍 오브라에 그것을 세웠습니다. 성전은 실로에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자기 도시에 두었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백성들은 에봇을 “
음란하게 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음란하다는 표현은 단순한 외적인 행동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두고, 그 대체물을 신앙의 도구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상징하던 에봇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우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조차도, 인간의 손에 들어가면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은혜의 상징이, 어느새 조작 가능한 신앙의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라는 백성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는 “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고 말하며 겸손하게 물러섭니다. 하지만 그 직후 그는 에봇을 제작하여 자기 도시에 두는 행동을 합니다. 겉보기엔 그의 의도는 괜찮아 보입니다. 백성들의 신앙을 돕기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이 ‘
좋은 의도’가 결국 이스라엘 전역을 우상숭배로 끌고 갔다고 단언합니다. 인간의 ‘선한 의도’조차 하나님의 뜻에 묻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 밖에서 실행될 때 결국 죄가 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은 분명히 드러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난 순간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근거로 신앙을 해석하려 할 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된 신앙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날 때 그 끝은 올무입니다.

기드온의 만년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내가 많았고, 자녀가 칠십 명이나 되었으며,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결국 자기 형제들을 죽이며 왕이 됩니다. 기드온은 결국 무덤 속으로 돌아가며, 그가 만든 에봇은 남겨진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끌어갑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아 위대한 일에 쓰임 받았던 기드온조차 결국 ‘
죄인’의 본질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에봇을 만들고, 아내를 거느리고, 자녀를 남기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추앙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인간의 허무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보다 보이는 것에 의지하고, 경험과 지혜에 기대어 신앙을 해석합니까? 심지어 ‘
좋은 뜻’으로 시작한 계획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상이 되고, 결국 자신과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기드온이 죽자, 백성은 그를 잊고 곧장 바알을 섬깁니다. 그들이 의지한 것은 하나님이 아닌 기드온이라는 눈에 보이는 지팡이였습니다. 기드온이 사라지자 그들의 신앙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설교자, 눈에 보이는 교회, 눈에 보이는 시스템에 신앙을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가시적인 요소에 신앙을 걸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
믿음으로 걷는 자들”이라 부릅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소망해야지, 보이는 것 자체를 붙잡으면 곧 우상숭배가 됩니다.

결국 이 모든 실패는 한 가지 진리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고쳐 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훌륭한 지도자도, 어떤 거룩한 제도도, 우리를 하나님께로 온전히 이끌 수 없습니다. 기드온조차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지혜와 자기 판단에 갇혀, 끝까지 죄만 생산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갇힌 사람들은, 보이는 예수 안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로 눈이 열린 자들만이 그분을 알아봅니다. “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라는 고백이 터져 나오는 자만이, 십자가 아래서 참된 평강을 누립니다. 보이는 것에 절망하고, 보이지 않는 은혜에 붙들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믿음의 길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좁은 길, 자기 부인의 길, 그 길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와 샬롬, 참된 평화는 오직 은혜 안에서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