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주께서 만드신 날이라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로다"(시편 118:24)
대학교 2학년인 지훈은 어느 날 오후, 친구와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있었지만,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쯤 그렇게 있다가 지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몸은 카페에 있었지만 마음은 인스타그램 피드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어제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가 몇 개 달렸는지 확인하고, 친구의 스토리를 보며 괜히 내 삶과 비교하고, 내일 있을 발표 생각에 가슴이 조여 왔습니다. 정작 지금 이 순간,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도, 커피 향도, 맞은편 친구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딴 데 있는 삶, 어제를 후회하거나 내일을 걱정하느라 정작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삶, 이것이 '깨어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성경은 놀랍도록 자주 "깨어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복음 24:42)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여기서 '깨어 있음'은 단순히 졸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 온전히 존재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에 휩쓸리고 있는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그것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을 때(마태복음 26:41), 제자들은 그 긴박한 순간에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현재를 붙잡지 못하고 흘러가버린 것이었습니다.
현준은 매일 아침 같은 루틴을 반복합니다.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뜨기도 전에 손이 먼저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씻고,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고, 습관적으로 버스에 올라탑니다. 학교에 도착했는데 오는 길에 무엇을 봤는지,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이 없습ㄴㄱ다. 그의 몸은 자동 조종 장치에 맡겨진 채 하루를 흘려보낸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은 점점 더 산만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이유 모를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SNS를 아무리 봐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자꾸만 비교하게 되는 마음, 시험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 이것들은 모두 '깨어 있지 못한' 삶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불렀습니다. 자동으로 흘러가는 욕망과 습관의 지배를 받는 상태 말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8:6)
어느 날 지훈은 학교 선배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배는 극심한 시험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직전까지 갔다가, 한 가지 훈련으로 삶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그 훈련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 밥만 먹는 것, 걸을 때 걷는 것만 느끼는 것, 숨을 쉴 때 그 숨결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 소용이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밥 한 술 한 술을 천천히 씹으며 먹었더니, 음식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캠퍼스를 걸으며 발바닥에 닿는 땅의 감촉을 느꼈더니,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봄바람이 느껴졌습니다. 그 바람이 기적처럼 고마웠습니다. 이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경험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만드신 날이라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로다"(시편 118:24) '이것'은 다른 어딘가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오늘입니다.
지훈은 차츰 자신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떠드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저 친구보다 못해." "이 발표에서 실패하면 끝이야." "어차피 넌 안 돼." 이 목소리가 에고입니다. 에고는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두려움으로 지금을 오염시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목소리를 알아차리기만 해도 그 힘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파도를 막을 수는 없어도, 파도가 온다는 것을 알면 쓸려가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들 때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태복음 14:31) 베드로가 빠진 것은 파도가 높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시선이 예수님을 떠나 파도로 옮겨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깨어 있음이란 흔들리는 파도가 아니라, 그 파도 위에 서 계신 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어로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과 같은 단어입니다.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에게 지금 이 순간은 선물이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 친구와 나누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수다가, 모두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공황장애에서 벗어난 선배가 했던 말입니다. "숨을 쉰다는 게 이렇게 대단한 일인 줄 몰랐어."
바울이 감옥 안에서 빌립보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내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립보서 4:11) 자족은 체념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충분함을 발견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깨어 있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지훈은 이제 매일 아침 5분을 다르게 시작합니다. 스마트폰을 집기 전에,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세 번 쉽니다.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만으로도 작은 경이로움이 찾아옵니다. 밥을 먹을 때 밥을 먹고, 친구와 대화할 때 그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예배할 때 예배의 자리에 온전히 있으려고 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비교하고, 걱정하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다시 지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깨어 있음이란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숨을 주신 분이 지금도 나와 함께하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어 있을 때, 삶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소풍이 됩니다. 안개가 걷히면 앞산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마음의 소음이 가라앉으면 하나님의 세계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꽃이 꽃으로 보이고, 하늘이 하늘로 보이고, 사람이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안에서, 우리는 창조주의 손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편 19:1) 깨어 있는 사람은 그 영광을, 지금 이 순간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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