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아홉 살 어느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렸고, 지하철 안에서는 핸드폰을 들여다봤고, 회사에서는 슬랙 알림에 반응했고, 퇴근 후에는 유튜브를 틀어 놓은 채 잠들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녀는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아무 소리 없이 혼자 앉아 있던 순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늘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늘 무언가에 반응하고 있었고, 늘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시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소음은 밖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소음은 안에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비교의 목소리들 입니다. "저 사람은 벌써 집을 샀다던데."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이 정도면 충분한 건가, 아직도 부족한 건가." 이 목소리들이 '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그 불안하고 초조한 목소리가 진짜 나일까요?
동양의 오래된 지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개의 '나'가 있다." 생각과 감정에 끌려다니는 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나, 전자를 에고(ego)라 부르고, 후자를 참나(眞我)라 부릅니다. 에고는 늘 무언가를 원하고, 비교하고, 결핍을 느낍니다. 그러나 참나는 고요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폭풍이 몰아쳐도 깊은 바다 밑바닥은 잔잔한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에고를 자신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승현이라는 청년은 서른셋에 번아웃이 왔습니다. 잘나가는 스타트업의 팀장이었고, 연봉도 나쁘지 않았고, SNS 피드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마음속 어딘가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었습니다. 더 많이 벌면, 더 좋은 차를 타면, 더 많은 '좋아요'를 받으면 그 구멍이 채워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구멍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그는 어느 주말, 충동적으로 강원도의 작은 펜션을 혼자 예약했습니다.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고,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시간은 불안했습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손이 자꾸 핸드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창문을 열고 아무 소리도 없는 산속의 어둠을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그 구멍의 정체를 알아챘습니다.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쳐 온 시간들이 만들어낸 공허함이었습니다.
진짜 나를 만나는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창문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그냥 바라보는 것, 이어폰을 빼고 걷는 것, 밥을 먹을 때 다른 화면을 보지 않고 그냥 밥맛에 집중하는 것,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에고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고, 고요하고 밝은 무언가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참'나'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자신을 가장 충만하게 만나게 됩니다. 밤이 깊어 아무 소리도 없을 때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그 고요함 속에서, 문득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기쁨의 눈물입니다.
스물아홉 살 그 여성은 요즘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혼자만의 시간을 예약해 둡니다. 카페도 아니고, 운동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처음엔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지만,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얻습니다. 자기 자신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가장 먼 여행은, 수많은 '가짜 나'의 목소리를 지나 '진짜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행인지도 모릅니다. 그 여행에는 비행기표도, 큰 용기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잠깐, 조용히, 혼자 앉아 있으면 됩니다. 내가 나를 만나는 그 순간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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