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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18.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 25:28)

서울의 한 직장인 이야기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면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짜증이 솟구쳤고, 상사에게 작은 지적이라도 받으면 그 말이 머릿속에서 퇴근 후까지 재생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 잘못 없는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이유도 모른 채 방 안에 혼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습니다. "
왜 이러는 걸까." 하지만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노예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말하고, 내가 행동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화가 나면 화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불안하면 불안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우울하면 우울이 덮어씌우는 색깔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학벌이 좋아도, 연봉이 높아도, SNS 팔로워가 수만 명이어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은 폭풍 앞의 돛단배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이 상태를 오래전부터 꿰뚫어 보았습니다. 잠언 기자는 말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 25:28). 성벽 없는 성읍은 침략자가 마음대로 들어와 점령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것이 마음을 내버려 둔 채 살아가는 우리의 민낯입니다.

어느 날 바닷가에 처음 나간 아이를 떠올려 보십시오. 파도가 밀려오자 아이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습니다. 파도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도는 밀려왔다가 반드시 빠져나갑니다. 발목 깊이밖에 안 되는 파도 앞에서 아이는 온 몸을 긴장시키며 전력 질주했습니다. 우리가 생각과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 꼭 이렇습니다.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올라옵니다. "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그 순간, 그 생각이 마치 영원한 진실인 것처럼 달라붙어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생각은 파도와 같습니다. 왔다가 갑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파도인 줄 모르고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흥미로운 방식으로 응하셨습니다. 마귀가 생각을 던져넣자, 예수님은 그것에 끌려가지 않으셨습니다. "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시며 그 생각을 말씀으로 직면하셨습니다(마 4:4). 생각이 찾아왔지만, 그 생각의 노예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생각을 '바라보는 자리'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 자리, 그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내면의 공간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메타인지라고 부릅니다.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 즉 자기 마음을 한 발 뒤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언어로는 더 오래된 이름이 있습니다. 깨어 있음, 혹은 근신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
근신하라 깨어라." 이 말은 단순히 "열심히 살아라"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는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자기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학교 기숙사를 상상해 보십시오. 룸메이트가 한 마디 던집니다. "
너 진짜 이기적이다." 그 말이 꽂히는 순간, 두 가지 반응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그 말에 즉시 점령당하는 것입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빨라지고, 반격할 말을 찾아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또 하나는 잠깐, 한 박자 멈추는 것입니다. '아,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그 한 문장이 상황을 완전히 바꿉니다.
'
화가 난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화를 바라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자리가 확보되면, 화는 나를 집어삼키지 못합니다. 이것이 알아차림의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자리를 확보합니까?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도구는 호흡입니다. 마음이 폭풍에 휘말릴 때,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는 정박지를 찾는 배처럼 나를 현재로 불러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 폐 안으로 공기가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 기술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
'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동시에 '호흡', '바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창 2:7). 호흡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임재와 연결되어 있는 행위입니다. 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은,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창조주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구름이 아무리 짙어도, 그 위에 파란 하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구름과 같습니다. 마음을 뒤덮어 세상을 회색으로 만들지만, 그것이 우리 존재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본질이요 기초입니다. 감정의 구름이 걷히면, 그 고요하고 맑은 바탕이 드러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 곧 사랑, 희락, 화평이 그곳에서 솟아오릅니다(갈 5:22).

그러나 이 여정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수년 동안 매일 자기 마음을 살피고 관찰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영적 훈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고,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일, 그것이 쌓여 마음의 근육을 만듭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은 혼자 머물지 않습니다. 잔잔한 물가에 돌을 하나 던지면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내 마음의 상태는 즉시 주변으로 번져 나갑니다. 내가 불안하면 옆에 앉은 사람이 이유도 모른 채 불편해집니다. 내가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으면 온 방의 공기가 무거워집니다. 반대로 내가 평온하고 밝으면,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선물이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롬 12:5). 한 지체가 아프면 다른 지체가 함께 아픕니다. 내 마음의 상태가 공동체 전체의 체온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환한 얼굴 하나, 부드러운 말 한 마디, 그것이 오늘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입니다.

감정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가 사라지지 않아도 서퍼는 파도 위에 섭니다. 화도 오고 불안도 오고 슬픔도 옵니다. 그러나 그것에 점령당하지 않고, 알아차리고, 숨을 고르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우리를 처음 지으신 분이 우리 안에 심어두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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