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도약이 아닙니다. 달리는 것도, 날아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오늘 주어진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이 있으면 뛰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변화되고, 단번에 거룩해지고,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걷는 존재로 부르십니다.
걷는다는 것은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방향이 분명하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폭을 보지 않으시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걷다 보면 반드시 넘어집니다. 돌부리에 걸리고, 발이 꼬이고, 예상치 못한 구덩이를 만납니다. 넘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인생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넘어지는 순간, 자신을 정죄합니다. “이 정도 믿음으로 왜 또 넘어졌을까.”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
하지만 성경은 한 번도 “의인은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넘어짐이 문제가 아니라, 넘어졌을 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넘어짐에 놀라지 않으십니다. 이미 아시고, 이미 계산하신 은혜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는 것은 결단이기 전에 은혜입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스스로를 끌어올릴 힘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이미 손을 내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넘어져 있는 우리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기보다 “일어나자”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란 완벽해지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눈물로든, 침묵으로든, 말 한마디 못하는 탄식으로든 그분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것이 일어남입니다.
이 말이 참 중요합니다. 걷는 동안, 넘어지는 동안, 일어나는 동안 삶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 회복되면 시작하겠다.”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그러나 삶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은혜는 늘 과정 한가운데에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과 동행하지 않으시고, 되어 가는 사람과 함께 걸으십니다.
"나는 계속 춤춘다." 이 문장은 신앙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춤은 균형이 완벽한 사람만 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춤은 기쁨이 조건을 만났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넘어서는 선택입니다. 넘어졌어도 춤춥니다. 다시 일어났기에 춤추는 것이 아니라, 넘어짐과 일어남 모두를 품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춤춥니다.
이 춤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춤이 아닙니다. 자기 과시의 춤도, 완벽함의 춤도 아닙니다. 은혜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추는 춤입니다.
신앙은 직선이 아니라 리듬입니다. 걷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믿음의 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걷습니다. 어쩌면 또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것이고, 그 사이에서도 우리는 춤출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 무대 위에서 끝까지 함께 계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둠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라.”(미가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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