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으로 사는 삶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진짜 의미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1.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38)

우리는 종종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을 잔인한 복수의 논리로 이해합니다. 누군가 내 눈을 다치게 했으니 나도 그 사람의 눈을 다치게 해야 한다는, 피로 피를 씻는 야만적인 보복의 원칙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성서적 표현의 본래 의미는 우리의 생각과 정반대다. 이것은 복수를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과도한 복수를 막기 위한 지혜로운 원칙이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에서 이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면, 한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을 속여 1만 파운드를 빼앗았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이런 분쟁이 생기면 법원으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대신 두 사람은 함께 랍비를 찾아갑니다. 때로는 가해자가 랍비에게 소환되기도 합니다. 유대 공동체에서 랍비는 단순히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재판관 역할도 겸하기 때문입니다.

랍비 앞에 선 가해자는 어떤 판결을 받을까요? 랍비는 당연히 빼앗은 1만 파운드를 돌려주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가해자가 그 돈을 반환하는 순간, 그의 죄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흰 옷감처럼 깨끗해지고, 완전히 결백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공동체의 그 누구도 그를 미워하지 않으며, 그는 과거의 잘못이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전통적인 정의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이 많은 외국인들에 의해 잔인한 복수의 논리로 왜곡되어 전해져 왔습니다. 실제로는 정반대의 의미인데도 말입니다. 이 율법의 핵심은 "상응하는 것으로 반환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깨뜨렸다면, 그에 상당하는 것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오토바이의 작은 헤드라이트를 깼는데 값비싼 자동차 한 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 율법이 왜 필요했는지 이해하려면 고대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당시에는 감정적인 복수가 만연했습니다. 이발사가 실수로 손님의 귀를 조금 베었다고 하면, 손님은 이발사의 팔 전체를 요구했습니다.

밭의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잘못 잘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피해자는 상대방의 재산 전부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작은 피해에 대한 보복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파멸적인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은 바로 이런 과도한 복수를 막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배상이 타당해야 한다는, 즉 피해와 보상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감정에 휩싸여 과도하게 복수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지혜로운 가르침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이 율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비례의 원칙입니다. 받은 만큼만 돌려주십시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의가 아닐까요. 복수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분별한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는 인간 지혜의 산물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오해해온 이 고대의 가르침은, 사실 평화와 공정함을 향한 인류의 오래된 염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복수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복수를 경계하는 정의의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