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밖으로 보이는 5월의 푸르른 신록을 바라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푸른 잎들은 어떻게 저렇게 생생한 생명력을 뿜어낼 수 있을까? 그 신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눈과 머리와 가슴, 그리고 마음 구석구석이 씻깁니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전체를 새롭게 하는, 신록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생명의 능력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존경하던 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다윗 왕도 인생의 마지막에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언젠가는 모두 그 길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길을 가느냐입니다. 병들고 쇠약해져서 고통 속에 가는 것과,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때가 되어 평안히 가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후자의 길을 가기를 원하십니다.
1903년생 오티스 클라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우리에게 진정한 장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클라크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8세 청년이었던 그는 오클라호마에서 발생한 끔찍한 인종 폭동을 목격했습니다. 백인 폭도들이 흑인 거주지를 습격했고, 그의 의붓아버지는 그 폭력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집은 불타고, 가정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살아남은 클라크는 LA로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의 삶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갇히게 됩니다. 25세 젊은이의 인생은 이미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어둡고 절망적인 교도소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구세군 전도자가 찾아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편이 있습니다. 이기는 편과 지는 편. 이기는 편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고, 하나님 편에 서지 않은 모든 사람은 집니다."
이 간단한 한 마디가 클라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계속 지는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생이 나아지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 것입니다.
출옥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25세, 그의 진짜 인생이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선다'는 말이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클라크의 삶을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편에 서는 것입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상황이 어떻든, 환경이 불리하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대로 믿고 순종하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클라크는 이 원칙을 평생 지켰고, 그 결과 109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단순히 오래 산 것이 아닙니다. 97세에 애틀랜타에서 시애틀까지 장거리 운전을 했고, 106세에는 아프리카 선교를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의사는 그의 심장이 35세 청년의 심장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가 직접 밝힌 다섯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첫 번째 비결: 용서의 능력
누군가 클라크에게 물었습니다. "의붓아버지를 죽인 백인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습니까?" 그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깊었습니다. "내가 주님께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훌륭한 행동이 아닙니다. 용서는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열쇠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쓴 뿌리가 자라나고, 그 쓴 뿌리는 결국 우리 몸을 병들게 합니다.
현대 의학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분노와 원한이 심장병, 고혈압, 면역력 저하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원한을 품고 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건강과 삶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전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클라크가 109세까지 건강하게 산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용서의 능력을 알았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쓴 뿌리가 자랄 틈이 없었고, 몸도 건강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비결: 정체성의 확신
클라크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전과자 출신의 흑인 집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였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하늘의 왕족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입니다. 이 진리를 진짜로 깨달으면 우리 인생이 완전히 바뀝니다.
클라크는 할리우드의 최고 배우 조안 크로포드의 집에서 요리사와 집사로 일했습니다. 그는 그저 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 탁월함을 보였고, 클라크 게이블, 찰리 채플린 같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탁월하게 일했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주부든, 사업가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정체성을 진짜로 깨달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됩니다.
세 번째 비결: 평온한 마음
클라크의 세 번째 조언은 쓸데없는 염려와 걱정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버리고 항상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놀라운 진리입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몸이 생명의 기운을 받기도 하고 죽음의 기운을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스트레스, 불안,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이 우리 몸에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각종 질병을 일으킵니다. 반대로 기쁨, 감사, 평안 같은 긍정적 감정은 엔도르핀,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시켜 건강을 증진시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빌립보서는 그 비결을 알려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 이것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클라크는 이것을 알았고, 평생 실천했습니다.
네 번째 비결: 하나님과의 교제
클라크는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영혼 구원과 교회 부흥을 위해서 금식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영적 생명의 필수 요소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참된 생명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은 우리 영혼에 생수를 공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젊게 하고, 활력 있게 하며, 장수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클라크가 106세에도 아프리카 선교를 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끊임없이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다섯 번째 비결: 육신의 관리
클라크는 음식과 운동 등 육신적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쇠고기, 계란, 스튜 등을 적당량 먹었는데, 특히 한 입마다 오래 씹었습니다. 정원에서 일하고, 걷기를 하며, 뜨거운 목욕을 자주 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은 영적인 책임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몸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 정신입니다.
클라크는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이들과 어울렸고,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몸은 나이를 먹었지만, 그의 마음과 영은 항상 젊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클라크가 109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가 평생 하나님 편에 서서, 용서하고, 긍정적으로 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몸을 잘 관리한 결과입니다. 그가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가 중요합니다. 용서를 심으면 용서를 거두고,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둡니다. 긍정을 심으면 긍정을 거두고, 말씀을 심으면 생명을 거둡니다. 기도를 심으면 응답을 거두고, 건강한 생활을 심으면 건강을 거둡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늘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세상 편에 설 것인가. 말씀 따라 살 것인가, 내 생각대로 살 것인가. 긍정적으로 살 것인가, 부정적으로 살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원한을 품을 것인가.
클라크는 25세에 선택했고, 그 선택의 열매를 109세까지 누렸습니다. 우리의 선택도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청청한 빛을 발하며 시편 92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노년의 모습입니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한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쓸모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진액이 풍족하다는 것은 생기가 넘치고 활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빛이 청청하다는 것은 싱싱하고 푸르다는 뜻입니다.
106세에 아프리카 선교를 두 번이나 다녀온 클라크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도 늙어서까지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며, 청청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창밖의 신록처럼 말입니다. 아니, 신록보다 더 싱싱하게, 더 푸르게, 더 생생하게. 지금 심기 시작하십시오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시편 91편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그가 장수함으로 내게 만족하게 될 것이라."
오티스 클라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용서하고, 정체성을 알고, 긍정적으로 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몸을 잘 관리하는 것. 이 다섯 가지는 모두 하나님 편에 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건강과 장수를 위한 좋은 씨앗을 심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건강하게 하시고, 장수하게 하시며, 범사에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어, 만족스럽고 평안한 마음으로, '선한 나이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5세 청년이 어두운 교도소에서 들었던 그 한 마디를 기억하십시오. "인생에는 두 가지 편이 있습니다. 이기는 편과 지는 편. 이기는 편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하나님 편에 서는 선택을 하십시오. 그것이 건강하고 풍성한 장수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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