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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

디도의 일기(11) - 빌립보에서 경고 없는 복음, 공포 없는 교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은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립보서 1:28)

바울은 두려웠습니다. 그 두려움은 채찍이나 감옥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아니었습니다. 그를 짓눌렀던 건
‘어떻게 교회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짧은 시간에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강가에서 시작된 작은 만남은 가정교회로 자라났고, 이방의 도시 한복판에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때였습니다. 바울의 과거를, 그의 사역을,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추격해 오던 한 인물, 블라스티니우스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자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경고해야 할까, 침묵해야 할까, 바울의 고민은 단순한 전략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성격에 관한 고민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미리 알리면 막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이 공동체는 무엇으로 움직이게 될까?”

바울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자라온 세계가 떠올랐습니다. 율법과 규정, 끝없는 경고로 가득했던 유대인의 세계, 조금만 잘못해도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 그 세계에서는 늘 조심해야 했습니다. 늘 대비해야 했습니다. 늘 긴장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병들게 만드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었습니다.
“율법이 빠진 자리를, 그리스도가 아니라 경고와 공포로 채우는 것이 옳은 일일까?”

경고로 지켜지는 교회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단을 경계하십시오.” “위험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물론 분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토대 위에서 그 말을 하느냐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밖에 나가면 위험한 사람 많아. 세상은 다 거짓말쟁이야. 절대 아무도 믿지 마.” 이 말은 아이를 지켜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상을 공포의 장소로 각인시킵니다. 아이는 자라서 사람을 만나기보다 피하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관계보다 방어가 먼저인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교회가 그런 공동체가 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는
‘위험을 피해 숨어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게 서 있는 공동체’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경고로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위협을 과장해서 성도들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적을 강조해서 내부 결속을 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한 가지를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원수를 만들지 않으려는 사도 바울의 또 다른 두려움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싸움이 나를 바꿔 놓으면 어쩌지?” 그는 자신이 방어적으로 변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설교가 복음이 아니라 해명과 반박으로 채워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말이 늘어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이 두려움은 사역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입니다.

상처를 받으면, 공격을 당하면, 우리는 모르게 말의 결이 달라집니다. 설교는 점점 날이 서고, 대상은 넓어지며, 마침내 복음은 누군가를 겨냥한 메시지로 변질됩니다. 바울은 그 길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울었습니다.
“거룩한 자녀들의 마음에 공포의 씨앗을 뿌리면서까지 무엇인가를 지켜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디모데의 한마디는 바울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선생님, 그 사람을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지 않을까요?” 그 말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바꿔 주었습니다. 블라스티니우스도, 로마의 칙령도,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펜 끝도 모두 하나님의 손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곧 드러났습니다. 바울이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로마에서는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를 빌립보에서 떠나게 할 사건이,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공포 없이도 교회를 지킵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까? 경고입니까, 복음입니까? 두려움입니까, 은혜입니까? 복음은 언제나 위험해 보입니다. 경고처럼 즉각적인 통제력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진짜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믿었습니다.그래서 그는 끝까지 공포 대신 그리스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 위에, 빌립보 교회는 오늘까지도 가장 기쁨이 넘치는 교회로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린도전서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