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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

디도의 일기(12) -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소녀를 만나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사도행전 16:18)

빌립보의 장터는 늘 소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물건값을 흥정하는 소리, 짐꾼들의 고함, 술에 취한 군인들의 웃음소리, 그러나 그 모든 소음을 찢고 들어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귀청을 파고드는 비명, 인간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절규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연극적인 외침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그 소리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새 빌립보 시민들의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델피에서 끌려온 어린 여자 노예였습니다. 그녀는 점을 치는 아이였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점을 치도록 이용당하는 아이였습니다. 세 명의 주인은 소녀를 알록달록한 천막 안에 가두고, 사람들의 불안과 호기심을 돈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스 세계에서 점쟁이는 신과 인간 사이를 잇는 존재였습니다. 아폴로의 신탁, 피톤의 영, 델피의 여제사장, 이 모든 종교적 상징들이 소녀의 광기 위에 덧씌워졌습니다.

하지만 소녀의 실상은 전혀 신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말은 때로 맞아떨어졌고, 대부분은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아서 해석했습니다. 인간은 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횡설수설하는 말도, 고통스러운 몸부림도, 심지어 광기마저도
“신의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면 상품이 됩니다. 그리고 그 상품은 잘 팔렸습니다.

그런 어느 날, 소녀는 바울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소녀는 집요하게 장터에서, 길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바울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외쳤습니다.
“이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예요!” “이분의 말씀을 놓치지 마세요!” 놀라운 일입니다. 소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였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생명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바울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지도, 맞장구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침묵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맞는 말을 하면, 출처가 어디든 괜찮은 것 아닌가?”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나?”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무엇’만이 아니라 ‘누가’‘어디서’도 중요합니다. 귀신 들린 소녀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실은 복음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오염시키기 위한 진실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그 외침을 받아들였다면, 빌립보 사람들은 이렇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아, 저 사도라는 사람들도 저 점쟁이 여제사장과 같은 부류구나.” “저들의 하나님도 수많은 신들 중 하나겠지.” 복음은 그렇게 다른 종교 중 하나로 흡수되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만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진실을 이용해 진리를 흐립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너무 익숙한 장면입니다.

어떤 강연장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잘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가능성을 믿으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틀린 말일까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비어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습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도, 인간의 전적 타락도 없습니다. 하나님 이름은 있지만,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지워진 메시지입니다. 귀신 들린 소녀의 외침과 닮아 있습니다. 진실의 언어를 쓰지만, 진리의 방향은 아닙니다.

바울의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분별이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날을 참았습니다. 이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분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돌아서서 명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그 순간, 소녀는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복음의 결과는 박해였습니다. 소녀의 주인들은 돈벌이를 잃었고,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복음은 늘 이렇게 작동합니다. 사람은 살리지만, 기득권은 무너뜨립니다.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정직을 선택한 직원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박수칩니다. 그러나 그 변화로 손해를 보는 구조는 분노합니다. 술집은 손님을 잃고, 부정한 거래는 끊기고, 겉치레 신앙은 불편해집니다. 빌립보의 장터와 다르지 않습니다.

귀신 들린 소녀는
“이분은 하나님의 사자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신의 입으로 복음을 증언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흘러나옵니다. 회개와 눈물, 진실한 고백과 자기 부인의 자리에서 선포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침묵했고, 그래서 결국 명령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집니다. 이 말은 맞습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이 말은 어디서 나옵니까? 복음은 언제나 진실한 입술과 깨진 심령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 외침은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을 살립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십시오. 왜냐하면 맞는 말이냐보다, 어디서 나온 말이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