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사도행전 16:25)
빌립보 감옥은 ‘갇히는 곳’이었습니다. 빛도, 바람도, 변명의 여지도 허락되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그곳은 억울함을 설명할 기회조차 빼앗기는 공간이었고, 인간의 존엄이 가장 손쉽게 짓밟히는 장소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선을 행하다가, 귀신 들린 소녀를 자유케 하다가, 복음을 전하다가 끌려왔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죄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체제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익 구조를 흔들었고, 다수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열광했고, 권력은 안도했고, 폭력은 정당화되었습니다.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질서를 위해”, “안정을 위해”, “다수의 감정을 위해” 희생됩니다.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분노가 먼저 달려들고, 진실보다 소문이 앞서고, 책임은 언제나 힘없는 쪽에 떨어집니다. 바울이 외쳤던 “나는 로마 시민이다”라는 말은, 단지 법적 권리를 주장한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당함에 대한 마지막 항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은 군중의 소음 속에 묻혔습니다. 진실은 종종 가장 큰 소리에게 집니다.
바울은 이미 여러 차례 채찍질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압니다. 이번이 얼마나 잔인한지, 얼마나 부당한지, “이런 고통은 아무리 자주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고백은 신앙인의 정직함입니다. 믿음은 고통을 무디게 만드는 마취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느끼게 합니다. 성도는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픔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상처가 덜 아픈 것은 아닙니다. 배신은 여전히 쓰리고, 억울함은 여전히 밤잠을 빼앗고, 실패는 여전히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믿음이 생긴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왜 하필 나입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등은 찢겨 있었고, 몸은 열로 타올랐으며,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통을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해되지 않는 장면은 여기입니다. 그들은 기도했고, 노래했습니다. 이건 초인적인 신앙의 쇼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지위도, 권리도, 계획도 아니었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호흡뿐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삶이 잘 풀릴 때는 기도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벽에 몰리면, 설명할 길이 막히면, 모든 출구가 닫히면, 그제야 우리는 노래가 아니라 신음 같은 기도를 합니다.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이 기도는 믿음의 승리가 아니라, 의존의 고백입니다. 놀라운 점은, 그 노래가 상황을 바꾸기 전에 사람을 먼저 바꾸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풀려나기 전에 이미 자유로웠습니다. 그들은 환경에 갇혀 있었지만, 존재는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 밤의 찬송을 누가 들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하게 감옥에 있던 다른 죄수들도 들었습니다. 절망이 가득한 공간에서 울려 퍼진 노래는, 설명 없는 복음이었습니다. 설교도, 변증도, 논증도 없었습니다. 다만 고통 한가운데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설교자가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삶이 증언이 될 수는 있습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태도가 바뀌는 순간 누군가는 묻게 됩니다. “왜 저 사람은 저 자리에서도 무너지지 않는가?” 빌립보 감옥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이 가장 깊게 시작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가장 실패했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가장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이 곧 축복이라는 단순한 공식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사용하시지만, 고난을 즐기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감옥 안에서도 일하시지만, 감옥을 사랑하시지는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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