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25,31)
빌립보 감옥은 단지 돌과 쇠로 지어진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실패한 인생들이 마지막으로 밀려 들어오는 절망의 저장고였습니다. 죄수들에게 감옥은 갇힌 장소였지만, 간수에게 감옥은 자기 생애 전체를 걸고 지켜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날 밤, 바울과 실라는 그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 던져졌습니다. 반죽음이 되도록 매를 맞은 채, 발에는 차꼬가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신음과 저주가 먼저 나왔을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원망이 아니라 찬양이었습니다.
찬양은 상황을 바꾸지 않아도, 공간의 성격을 바꿉니다. 한밤중, 감옥에 울려 퍼진 찬송은 이상했습니다. 그 음성은 억지로 쥐어짠 신앙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고통을 이미 지나온 사람들처럼, 아니, 고통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담담하고 또렷했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다른 죄수들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맞고, 묶이고, 버려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봅니다. 찬양은 상황이 좋아질 때 나오는 결과물이 아니라,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무너지지 않는 정체성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풀려날 사람’처럼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유인처럼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지진은 감옥을 흔들었지만, 진짜 무너진 것은 간수의 세계였습니다. 그때, 감옥이 흔들렸습니다. 돌벽이 갈라지고, 쇠사슬이 풀리고, 문짝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지진은 물리적인 사건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균열은 간수의 내면에서 일어났습니다. 간수는 잠에서 깨어나 문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결론만 떠올랐습니다. “끝났다.” 로마의 법 아래서 죄수를 놓친 간수의 운명은 명확했습니다. 그는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자기 손으로 생을 끝내는 것이 그나마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선택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현실과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끝이지.” “이 일은 되돌릴 수 없어.” “차라리 여기서 멈추는 게 낫겠다.” 문이 열렸다고 해서 자유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절망은 언제나 마음속에서 먼저 탈출을 선언합니다.
바울의 외침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시오!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소!” 이 한마디는 칼보다 빨랐습니다. 그 외침은 간수의 죽음을 멈춰 세웠고, 그의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꺾어 놓았습니다. 간수는 칼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제가 살 수 있겠습니까?” 흥미로운 점은 이것입니다. 간수는 이미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살 수 있는 길’을 다시 묻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숨이 붙어 있다고 해서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바울의 대답은 길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논증도 없고, 조건도 없습니다. 설득도 없습니다. 오직 선포입니다. 복음은 늘 이렇습니다. 사람이 가장 바닥에 있을 때, 가장 단순한 언어로 다가옵니다. 간수는 이해했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닙니다. 붙잡을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그날 밤,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씻겼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감옥 깊숙이 밀어 넣었던 손입니다. 이 장면은 회개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회개는 감정이 아니라 방향 전환입니다. 자신이 가했던 폭력을, 이제는 치유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는 세례가 이루어졌습니다. 감옥의 물이 아니라, 강물에서,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생명의 자리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감옥 안에서도 일하시지만,
밖에서도 이미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간수가 준비되고 있었고, 감옥 밖에서는 루디아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조용히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치밀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녀는 로마 시민권이라는 세상의 언어를 사용해
불의한 권력을 몰아붙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는 찬양을 맡기시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항의와 압박을 맡기십니다. 하늘의 정의는 언제나 여러 사람의 순종을 엮어 완성됩니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기적은 지진이 아닙니다. 문이 열린 감옥에서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다른 자유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는 쇠사슬이 풀려서가 아니라, 주님이 그 한가운데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감옥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문은 열렸는데, 마음은 여전히 묶여 있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때 들려오는 복음의 음성은 늘 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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