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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디모데전서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8.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디모데전서 1:1~2)

우리는 종종 성경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오늘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을까?” 특히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 같은 ‘목회서신’으로 분류된 책을 대할 때는 더 그렇습니다. 목회자들에게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라고 가르치는 실무 지침서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이 편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목회 매뉴얼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참 아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깊은 언약의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안정된 사역의 절정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혔고, 언제 다시 자유를 얻을지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인생의 하강 국면, 실패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바울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훈계하며 교회를 정비하겠다고 편지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 편지는 도대체 누구를 향한 것인가?” 바울은 서신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먼저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력이나 헌신, 사역의 성과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누구의 명령 아래 있는 사람인지, 누구의 소유인지부터 밝힙니다. 바울에게 사도란
‘대단한 직함’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존재, 곧 자기 뜻이 아니라 보낸 분의 뜻만 드러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택배 기사님이 상자 안의 물건을 자신의 것처럼 설명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단지 “보내신 분의 물건을 정확히 전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바울 역시 자신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보내진 사람, 복음의 소유자가 아니라 복음의 전달자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를 이렇게 부릅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여기서 ‘아들’이라는 표현은 혈연이나 나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디모데는 바울의 친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어정쩡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완전한 유대인도 아니었고, 헬라인 사회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디모데를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매우 결정적인 선언입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의 자식이냐?” “어느 집안 출신이냐?” “무엇을 이루었느냐?” 그러나 복음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누구 안에 있느냐?” 디모데는 바울 안에서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에게서 복음을 ‘잘 배워서’ 아들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곧 믿음 자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참 아들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어떤 태도나 열심이 아니라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란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가 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나는 아직 부족해.”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못 해.” “나는 자격이 없어.” 하지만 복음은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너는 얼마나 잘하느냐?” 복음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 안에 있느냐?”

부모의 사랑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 아이가 말을 잘 듣기 때문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해서도 아닙니다. 그 아이가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입니다. 넘어지고 실수해도, 말썽을 부려도 부모는 그 아이를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안아 줍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선언한
‘참 아들’이라는 말도 바로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디모데는 사역을 잘해서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을 잘 섬겨서 아들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를 아들이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이 축복의 순서를 잘 보아야 합니다. 먼저 은혜, 그 다음 긍휼, 그리고 평강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진 생명입니다. 긍휼은 연약함과 실패를 아시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평강은 모든 조건이 해결되어서 얻는 안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누리는 안식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옵니다. 출처가 분명합니다. 교회에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의 노력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에서, 십자가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정의하며 살아가는가? 사람들의 평가인가, 직분인가, 역할인가? 아니면 여전히 부족하다는 자기비난인가? 디모데전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미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다.”

그리고 참 아들된 자는 날마다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확인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교회이고,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인 것입니다. 이 진리 안에서 오늘도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증명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주어진 아들의 자리에서 안식하고 있는가, 십자가 앞에서, 그 질문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를 붙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