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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유다서

마음을 표현하며 살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3.

한 연구팀이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가족은 당신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론이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연구팀이 그 가족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가족에게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낍니까?" 놀랍게도 절반 이상이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사랑은 마음속에 있었지만, 상대방의 가슴에는 닿지 않았던 것입니다.

25년을 함께 산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아주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다른 형제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이 부부만이 사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그 지친 새벽, 남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
여보, 고마워." 아내는 그 말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25년 만에 처음 들어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남편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아무리 깊어도 상대방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누구보다 활발하게 감정을 표현합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게시물에는 "
사랑해요❤️"를 수백 개씩 달면서도, 정작 매일 밥을 차려주는 부모님께는 "잘 먹었어"라는 말 한마디를 아낍니다. 친구의 생일에는 정성스러운 카드와 선물을 챙기면서, 10년을 곁에서 지켜봐 준 절친에게는 "고마워"를 마지막으로 말한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가까울수록 말이 줄어드는 이상한 역설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
친밀성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당연히 알겠지"라는 착각이 커지고, 표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표현을 아끼게 되는 것입니다. 울리지 않는 종은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소리를 내야 비로소 종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아무리 진해도 상대방의 삶 속에서 울려 퍼지지 못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가트만은 수십 년에 걸쳐 수천 쌍의 부부를 관찰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래도록 행복한 커플은 특별히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더 자주 표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 이상 긍정적인 말을 주고받는 커플은 그렇지 않은 커플보다 이혼율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특별한 사랑의 능력이 아니라, 표현하는 습관이 관계를 지속시킨다는 것입니다.

표현은 근육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듭니다. 20대 커플들이 처음 "
사랑해"라고 말할 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오래된 관계에서 갑자기 "고마워"를 꺼내려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근육은 쓸수록 강해집니다. 처음 헬스장에서 아령을 들 때 3kg도 무거웠지만, 꾸준히 들다 보면 10kg도 가뿐해지는 것처럼, 표현도 반복할수록 자연스러워집니다.

한 직장인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남자친구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여자친구가 "
나 예쁘지?"라고 물어도 ""으로 끝냈고, 맛있는 음식을 해줘도 묵묵히 먹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말을 해줘야 알지." 그날 이후 남자는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마디씩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피곤했을 텐데 와줘서 고마워." "이 음식 맛있다, 네가 만들어줘서 더 맛있어." 처음 한 달은 어색해서 문자로만 보냈습니다. 두 달이 지나자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그것이 그 사람의 말투가 되었습니다.

표현이 꼭 말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퇴근하는 배우자에게 건네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시험을 앞둔 친구에게 보내는 짧은 문자 하나, 생일도 아닌데 부모님께 보내는 꽃 한 다발, 이 모든 것이 표현입니다. 요즘 MZ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
표현 안 해도 알잖아."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확실한 것을 필요로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확인 욕구'라고 합니다. 아무리 사랑을 받고 있어도, 그 사랑이 언어나 행동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인간의 뇌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연인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불필요한 다툼의 상당수가 사실 표현의 부재에서 비롯됩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 표현의 도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카카오톡 한 줄, 인스타그램 DM 하나, 짧은 음성 메시지 하나로도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도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소중한 선배를 갑작스럽게 잃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 그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
왜 그때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더 자주 연락하지 못했을까.'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우리 많이 표현하면서 살자, 서로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고맙고 사랑해." 남편의 답장이 왔습니다. "연말정산이야? ㅋ"
웃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표현을 특별한 날을 위해, 혹은 위기의 순간을 위해 아껴둡니다. 마치 연말에 한꺼번에 정산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정산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한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가 오랜 임종 경험을 책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관찰한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가장 공통된 후회는 이것이었습니다. "
더 많이 표현하지 못한 것."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더 많이 말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파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함께 밥을 먹은 그 사람이, 오늘 저녁에도 내 곁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사랑해." "고마워."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 말들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말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때로는 삶 전체를 바꿉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러나 표현된 사랑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살아남아, 그 사람이 가장 힘든 날 밤을 버티게 하는 빛이 됩니다. 지금 당장, 가장 고마운 사람에게 문자 하나를 보내십시오. 오늘 하루를 넘기기 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