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흔히 놓치는 진리가 있습니다. 심리적인 문제는 곧 영적인 문제와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을 영과 육의 경계선으로 묘사합니다. 마음은 몸의 감각을 담아내는 동시에 영의 숨결을 담아내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은 육체의 창이면서 동시에 영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양한 심적·영적 질환을 경험하게 됩니다.
육신의 병은 통증을 통해 쉽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조용히 번지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마음의 병은 육신의 병보다 더 깊고 더 위험합니다.
최근 심리학과 내면치유 영역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마음의 상처와 응어리를 알아차리는 기술”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에서 이것을 ‘알아차림’이라 부릅니다. 거쉬탈트 심리학에서는 알아차림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개인이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외적 사건들을 지각하고 체험하는 일.”
욘테프는 이것을 현재 순간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각, 감정, 생각, 욕구, 상황을 온전히 지각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더 나아가, 그 순간의 행동을 선택하는 주체가 ‘나’임을 알고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현상 알아차림은 몸, 감정, 욕구,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위 알아차림은 그 현상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특히 현상 알아차림은 신체감각·욕구·감정이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신체 감각은 단순히 “몸이 아프다”라는 차원을 넘어서, 내면의 감정과 영의 움직임을 몸이 표현해 주는 통로입니다. 심리학에서도 내면치유의 핵심은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의학에서 “질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정은 몸을 통해 혀처럼 드러납니다.
실제로 상처받은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새어머니에게 학대를 받은 한 자매는 어머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입술이 떨리고 목소리가 가늘어졌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녀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몸은 이미 억눌린 분노를 보여주고 있는데, 마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그녀가 자신의 신체 감각을 ‘알아차리기’ 시작하자, 꽁꽁 눌려 있던 감정이 뚫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눈물은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내면이 말하는 실제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는 신호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체감각 알아차림의 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작 지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개인의 욕구보다 공동체의 기대,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나 열망을 살필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제도 속에서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신의 영적 욕구, 소명, 갈망을 알아차리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구를 추상적으로 말합니다. “사랑받고 싶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다.” “좋은 남편·아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이는 너무 막연합니다. 알아차림은 훨씬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누구에게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 “나는 지금 바람을 쐬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필리핀의 도시 빈민들을 위해 사역하고 싶다.”
욕구는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일수록 행동을 낳고, 행동은 다시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합니다. 이것이 욕구 알아차림의 목적입니다.
감정은 욕구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욕구가 충족되면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고,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서러움·두려움 같은 불편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감정을 정확히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은 삶의 질과 직접 연관됩니다. 감정은 경험을 통해 더 깊어지고, 경험이 풍성할수록 우리의 내면 세계도 넓어집니다.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마음속 깊은 곳에 미해결 과제로 남습니다. 이것이 바로 쓴뿌리입니다. 그리고 쓴뿌리는 결국 신앙의 자리에서도 수많은 오류, 상처, 오해를 낳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결국 이 쓴뿌리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풀지 못한 원망, 이해받지 못했다는 억울함, 반복되는 관계의 상처, 이 모든 것이 감정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치함으로써 생겨난 결과입니다.
감정을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감정은 영혼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감정도 함께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죄가 아니라, 진리로 우리를 이끄는 신호입니다.
마음의 알아차림은 곧 영적 분별의 시작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분별”을 특별한 능력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방식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분은 감각을 통해, 감정을 통해, 몸의 미세한 신호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일은 곧 영의 소리를 듣는 연습입니다. 알아차림은 단순한 심리기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진실하게 마주하는 영적 연습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신호를 외면할수록 영혼의 목소리는 흐려집니다. 감정을 무시할수록 영적 분별은 어두워지고, 욕구를 억누를수록 하나님이 주신 소명은 흐려집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십니다. 빛 가운데 서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어둠도 정직하게 바라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을 더 선명히 발견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하시는 은밀한 흐름을 따뜻한 감각과 열린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영적 분별이라는 선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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