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여러 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내면의 움직임을 느끼는 능력, 즉 ‘느낌’입니다. 이 느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속사람(영)의 작용이며,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움직여 주시는 은혜의 자극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알아차림’이라고 부르고, 특히 마음의 신호를 감지하는 것을 ‘현상 알아차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더욱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행위 알아차림’, 즉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입니다. 그에 관한 내용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 성장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며, 우리의 관상기도가 반드시 비추어야 할 영역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행동을 내면에서 듣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행동 방식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갈등을 피하려 하고, 누군가는 늘 공격적이며, 또 누군가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책임지려 합니다. 이런 행동 패턴은 대부분 오래된 습관, 혹은 상처에서 비롯된 반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왜 그처럼 행동하는지조차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의 은혜를 경험하고 성령의 빛 가운데 서게 되면, 과거에는 전혀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결손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왜 나는 늘 이렇게 급하게 반응할까?” “왜 나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민감할까?” “왜 나는 늘 스스로를 희생시키며 살아왔을까?” “왜 어떤 상황에서는 도무지 내 감정을 건드릴 수 없을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의 깊은 뿌리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 알아차림입니다.
행위 알아차림에서 가장 먼저 다룰 문제는 ‘접촉경계 혼란’입니다. 이 혼란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능력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생깁니다.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섞여 버리고, 나의 책임과 타인의 책임이 구분되지 않으며, 타인의 감정을 너무 쉽게 가져오거나, 반대로 내 감정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문제를 만든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경험상, 비행청소년들 역시 폭력이나 절도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죄책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은 이미 습관화된 무의식의 패턴이었고, 그 근원에는 어린 시절 형성된 접촉경계의 혼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변화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아무리 충고를 해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전문적인 도움과 깊은 영적 조명이 필요합니다.
행동은 생각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보다 생각의 틀에 더 얽매여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늘 과거의 경험으로 해석하며, 새로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어차피 안 될 거야.” “예전에 실패했으니까 이번에도 실패할 거야.” “세상은 믿을 수 없어.” 이러한 사고는 대부분 어린 시절 좌절된 욕구에서 시작됩니다. 그때 해소되지 못한 상처는 미해결 과제로 남아 어른이 된 후에도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실패하면 끝이다’, ‘일등만이 가치 있다’는 내면의 명령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이런 내사는 사고를 더욱 경직시키고, 결국 삶을 짓누릅니다. 오늘날 경쟁 중심의 사회와 교육은 이런 사고 틀을 더욱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습관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만들어진 행동의 근육입니다. 그래서 고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의 행동의 깊은 뿌리를 드러내시고 그 패턴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를 들어, 항상 착실해야 한다고 배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착실함’을 유지하려고 자신을 짓누릅니다. 자신의 욕구는 억눌리고, 타인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인정받지 못했던 상처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인정’의 굴레에 묶여 불필요한 소비와 과도한 관계 유지에 삶을 소모합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그런 행동을 전혀 문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의 패턴은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는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조명하실 때, 처음으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주변 사람을 상하게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스로를 묶어 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왜 우리의 숨겨진 행동 패턴을 드러내실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성령의 알아차림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해방을 주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옛 사람의 습관에서 벗어나 새 사람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습관적 행동은 거의 항상 옛 사람의 경험과 상처에서 흘러나옵니다. 성령께서는 이 굳어진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행동의 질서를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 모두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행동 패턴이 바뀌면 관계가 바뀌고 삶의 질이 바뀌며 영적 시야가 열립니다.
행위 알아차림은 결국 이런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행동 속에 새겨진 상처와 왜곡, 죄의 습관을 비추실 때, 우리는 단지 깨닫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선택의 자유를 얻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패턴대로 살지 않고 성령이 이끄시는 새로운 삶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행위 알아차림은 ‘나는 이렇게 행동해 왔다’는 심리적 통찰을 넘어 ‘성령께서 나를 이렇게 새롭게 이끈다’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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