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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62

윤리와 영성 사이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윤리이고, 다른 하나는 영성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비롯되었지만, 우리의 삶 안에서는 늘 함께 작동합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언제나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윤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작동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회와 제도, 책임과 의무, 상식과 합리성의 영역입니다. 반면 영성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영의 인도하심, 말씀과 성령의 역사, 인간의 계산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이 둘은 본질부터 다릅니다. 윤리는 ‘내 안에서 시작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영성은 ‘밖에서 와서 나를 움직이는 것’.. 2026. 1. 31.
정직을 잃어버린 세대, 그리고 다시 배워야 할 용기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멸망시키느니라.”(잠언 11:3)요즘 젊은 세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긱(geek)’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오타쿠(御宅)’라고 합니다. 본래 이 말들은 단순히 특정 분야에 몰두한 사람을 가리켰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자기 세계에 갇힌 사람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졌습니다.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해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관계의 방식입니다. 얼굴을 맞대고 이름을 부르며 책임을 지는 관계보다, 익명 뒤에 숨은 채 부담 없이 드나드는 관계가 더 편해질 때, 그때부터 인간은 서서히 정직을 잃어갑니다. 익명성은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부정직을 연습하는 가.. 2026. 1. 23.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연습 - 소멸이 아닌 옮겨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죽음은 늘 갑작스럽고, 잔인하며, 모든 것을 끝내는 사건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 멀었어”, “지금은 바빠”라는 말로 죽음을 삶의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외면과 상관없이,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 교수는 죽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입니다.그는 죽음을 ‘댐이 무너지는 순간’에 비유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계에 다다른 구조물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육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 사용되어 온 몸이라는 그릇이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그러나 중요한.. 2026. 1. 22.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옷을 벗는 사건이다 “우리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린도후서 5:1)우리는 흔히 죽음을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숨이 멎고, 심장이 멈추고, 더 이상 말도 움직임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죽음은 늘 두려움의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만일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전환이라면 어떨까요? 죽음을 그렇게 바라보십시오. 죽음은 생명의 종료가 아니라, 몸이라는 옷을 벗는 사건인 것입니다.우리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이 세상에 옵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옷을 입고 벗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옷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복장이 달라집니다. 육체도 이와 비슷합니다. 영혼이 이.. 2026.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