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한일서 3:8)
영적인 사역의 길을 걷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몸의 반응과 마음의 흔들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 중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찾아오기도 하고, 사역을 마친 뒤 이유 없이 힘이 빠져 며칠을 앓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영적 공격”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너무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역자들이 혼란을 겪습니다.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전이인지, 아니면 사단이 가한 영적 손실인지 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증상만 놓고 보면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서 분별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사역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출발점이 됩니다.
영적 전이는 대개 사역 초기에, 혹은 치유와 돌봄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납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데, 그 사람의 아픔이 내 몸으로 느껴지는 경험이나 아직 말하지 않은 고통이 마음에 떠오르거나, 어느 부위에 손을 얹어야 할지 분명해지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지식의 말씀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전이는 사역자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감당해야 할 범위와 한계를 알게 하시려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적 전이는 기도 후 사라집니다. 사역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나아가면, 통증도 피로도 함께 거두어집니다. 오히려 마음에는 평안이 남고,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확신이 자리합니다. 이때 중요한 표지는 이것입니다. 전이는 사역을 가능하게 하지만, 손실은 사역을 마비시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악한 영은 사역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험이 부족하거나 분별이 약한 사역자를 집중적으로 노립니다. 왜냐하면 그를 무너뜨리는 것이, 그가 섬기는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손상은 대개 축사와 깊은 치유 사역의 현장에서 발생합니다. 악한 영에 의해 생긴 문제를 단순한 질병이나 심리적 문제로만 다룰 때, 사역자는 방어 없이 공격을 받습니다. 그 결과는 빠르고 거칠게 옵니다.
몸이 이유 없이 무너집니다. 어지럼증과 이명이 찾아오고, 잠을 잘 수 없게 됩니다. 정신은 흐릿해지고, 기도하려 하면 힘이 빠집니다. 사역은 부담이 되고, 영적인 일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상태를 영적 전이로 오해하는 순간, 사단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역자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이는 성령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영적 손상은 사단의 침투 결과입니다. 전이는 사역을 더 분명하게 만들고, 손상은 사역을 흐릿하게 만듭니다. 전이는 기도로 회복되지만, 손상은 방치할수록 깊어집니다. 전이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지만, 손상은 사역자를 고립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이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공격이 한 사람 안에서 뒤섞이는 기이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겉으로는 사역을 계속하지만, 속에서는 점점 생명이 말라갑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양신 역사’의 위험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능력 없이 영적 세계를 흉내 내다가 큰 수치를 당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동일한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불쌍함과 열심만으로는 악한 영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분별 없는 담대함은 믿음이 아니라 무모함입니다. 영적 사역에는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량을 넘어서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끊임없이 그 선을 넘게 만듭니다.
왜 어떤 사역자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왜 어떤 사역자는 몇 년 후 조용히 사라지는지 아십니까? 그 차이는 은사의 크기가 아니라, 분별을 배우는 태도에 있습니다. 영적 삶은 단순히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속임을 구별해 가는 훈련의 연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몸 된 교회와 사역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마귀의 위장술을 꿰뚫어 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열심조차 공격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 모든 것을 이길 길은 하나입니다.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분별이 흐려지고, 분별이 흐려지면 결국 속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가 졸고 있을 때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자 앞에서는 결코 당당하지 못합니다.
영적 전이와 영적 손실의 차이를 아는 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금 내가 겪는 것은 성령의 인도인가, 아니면 침묵 속 공격인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 사역을 오래, 그리고 끝까지 감당하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에베소서 6:12)
'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의 이해를 위해서, 성령의 이해부터 (1) | 2025.12.26 |
|---|---|
|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시대 - 준비하지 않으면 은혜도 짐이 된다 (0) | 2025.12.19 |
| 통찰력이라는 눈 (1) | 2025.12.14 |
|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비추실 때 - 행위 알아차린다 (0) | 2025.12.12 |
| 마음의 알아차림과 영적 분별의 길 (0) | 2025.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