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이른 비를 적당하게 주셨고 너희에게 비를 내려 주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게 하셨음이라 마당에는 곡식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요엘 2:23~24)
세상의 일은 대부분 준비의 문제로 갈립니다. 미리 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위기의 순간이 오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허둥대며 그때서야 준비하려는 사람은, 이미 많은 것을 잃은 뒤가 됩니다. 준비 없이 일을 맡으면 효율은 떨어지고, 불필요한 손실이 생기며, 주변 사람들까지 혼란에 빠뜨립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이는 ‘비효율적 경영’입니다. 생산성은 낮아지고, 경쟁력은 자연히 약해집니다.
우리 농업과 1차 산업이 그러했습니다.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예고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암담한 현실입니다. “정부가 알아서 보상해 주겠지”라는 안일함은 위기를 통과하는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세상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동일한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교회에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요엘 선지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꿈과 환상, 예언과 성령의 임재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교회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선물은 준비된 손에 들려질 때 복이 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받으면, 은혜는 곧 혼란이 되고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충분히 경험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부어주셨지만, 이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신학적 준비가 부족했던 사람들은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상처를 입었고, 세상에는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은사를 사용한 개인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가르치지 않았고, 분별하게 하지 않았으며, 준비시키지 못한 지도자의 책임이 함께 얽혀 있는 비극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이미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단순한 종말 이야기나 경각심의 차원만이 아닙니다. 등불은 들고 있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준비 없는 신앙의 비극을 상징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비유가 곧이어 달란트 비유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달란트, 곧 은사와 직임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은 서로 다른 분량의 달란트를 받습니다. 문제는 ‘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준비하고 사용하느냐’입니다. 아무런 이해 없이, 아무런 분별 없이 은사를 다루면, 그 은사는 교회를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이 결국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는 말씀으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은사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준비된 자에게는 생명이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은사를 개인적 체험이나 감정의 영역으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은사를 종말적 사건으로 다룹니다. 은사는 교회를 긴장하게 하고, 깨어 있게 하며, 준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종말적 시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는 종말을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과거에는 거짓 종말 소동이 교회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지금은 이단과 왜곡된 영성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초림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지식은 풍부했지만, 현실을 분별하는 눈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말하며, 바로 눈앞에 서 계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마지막 시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마당에는 곡식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라.” 지금 우리는 이 말씀의 성취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곡식은 생명의 양식인 말씀에 대한 깊어진 이해이며, 새 포도주는 새로운 사역의 구조와 질서, 기름은 성령의 기름부음과 은사, 그리고 직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례 없이 풍성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풍성함은 자동으로 성숙을 낳지 않습니다. 준비되지 않으면, 넘침은 혼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만약 준비해야 할 지도자들이 외면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이 그랬고, 돌들이 소리 지르게 하신다는 말씀도 그 맥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우리의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대안일 뿐입니다. 무지한 체계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돌 감람나무는 언젠가 참 감람나무로 바뀌어야 합니다. 즉, 은혜의 체계는 반드시 진리와 지식의 체계로 성숙해야 합니다.
지금은 구경할 때가 아닙니다. 비판만 할 때도 아닙니다. 두려워하며 피할 때도 아닙니다. 지금은 준비할 때입니다. 말씀으로, 분별로, 겸손으로, 그리고 종말적 긴장 속에서 준비할 때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이미 주어지고 있다면, 그것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준비된 교회만이 이 시대의 은혜를 생명으로 누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태복음 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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