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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 앞에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6.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린도전서 14:40)

우리는 종종 설교나 신앙 담론 속에서 “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은 언제나 선하고 순수한 이상처럼 들립니다. 마치 초대교회는 아무런 혼란도, 오류도, 왜곡도 없이 완벽한 신앙 공동체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초대교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정제되고 질서 잡힌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혼란과 실험, 열광과 좌절이 뒤섞인 하나의 거대한 신앙 실험실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을 맞았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자유는 주어졌지만 질서는 즉시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혼란 속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부정부패와 이념 갈등은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습니다. 새로운 체제가 정착되기까지는 반드시 혼란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약 300년 동안, 교회는 제도도, 성경도, 통일된 예배 형식도 없는 상태로 혼란 속을 지나야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혼란은 ‘
열광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예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시 오겠다.” 그리고 그 약속은 “너희 중 몇은 죽기 전에 이를 보리라”는 시간적 긴박감까지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더구나 현실은 종말의 징조처럼 보이는 사건들로 가득했습니다.

기근이 있었고, 전쟁이 있었고, 박해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지성소에 이방인이 발을 들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믿었던 곳이 아무런 신적 징벌 없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며 그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
이제 정말 끝이 왔다”는 확신을 더욱 굳히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산을 팔았고, 모든 것을 내놓았으며, 날마다 모여 먹고 마시며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런 모습을 보면 쉽게 ‘광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초대교회의 상당수 성도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광신자에 가까웠습니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을 알고 있었지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이면 사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사도가 없으면 사도의 제자들이 전해 준 이야기에 의존했습니다.

사도들의 편지를 낭송하는 사람을 ‘
케릭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설교자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에 가까웠습니다. 글을 읽어주고, 해석해주고,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인기를 끌었고 그가 있는 모임에는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모임이 끝나면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술도 마셨고, 때로는 지나치게 마셨습니다. 그래서 다툼이 생겼고, 식사 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흥이 오르면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흥분 속에서 환상을 보고 자신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재림을 보았다는 사람, 천사를 만났다는 사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
영적인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며 열광은 점점 더 증폭되었습니다. 꺼져가는 열기, 그리고 다른 방향의 열정, 그러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 재림은 오지 않았습니다. 임박하다고 믿었던 재림은 점점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생업을 회복했고, 기존 사회 질서 속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자신들의 확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열정은 다른 형태로 분출되었습니다. 바로 ‘
순교의 열망’이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 순교를 영광으로 여기는 태도는 이 임박한 종말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그 열정은 교회를 어떤 박해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공동체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극단성을 동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초대교회의 모습을 오늘의 교회가 그대로 따라야 할까요? 날마다 모이고, 모든 재산을 내놓고, 생업을 포기하고, 죽음을 갈망하며 사는 것이 과연 성숙한 신앙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했던 특수한 신앙 반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42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입니다. 순간의 열광으로 올인하는 신앙은 오히려 신앙을 소진시킵니다. 질서와 균형이 없으면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오늘의 교회, 오늘의 자리 우리는 초대교회도 아니고 중세교회도 아니며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의 교회입니다.

과거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고 복제해서도 안 됩니다. 시대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고, 책임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군중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
’를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사라지고 집단만 남는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집단주의입니다.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교회입니다. 당신의 직장이 교회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복음의 전령사, 케릭스인 것입니다.

세상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고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이 되는 이원적 신앙은 위선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한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말입니다.

초대교회의 열정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오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신앙을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차분하게, 현실적으로, 그러나 깊이 있게, 이 시대의 교회는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