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5)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조금만 더 이루면, 그때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 나은 환경, 더 많은 재산, 더 많은 선택지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믿습니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얻기 시작할 때, 잠시 마음이 설레고 기대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소유는 늘 더 많은 소유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삶은 때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실을 가르쳐 줍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오히려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통사고로 외모와 신체의 자유를 잃은 이지선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사고 직후 그녀는 절망했습니다. 이전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고,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삶의 자리 안에서 새로운 목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자, 오히려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고, 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집중 속에서 그녀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고, 행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개인적인 감동을 넘어 학문적으로도 관찰된 사실입니다. 밀라노 대학의 심리학 교수 파우스토 마시미니 박사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연구하며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장애를 가져온 사건을 “인생에서 가장 부정적인 사건이자 동시에 가장 긍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불필요한 선택들이 사라졌고, 오직 한 가지 목표에 전력으로 몰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몰입할 때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플로우(flow)’는 바로 이 상태를 가리킵니다. 한 가지 일에 깊이 빠져들어 시간과 자신을 잊을 정도로 집중할 때, 우리는 강한 만족과 기쁨을 경험합니다. 장애를 입은 이후 새로운 목표를 발견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분명한 목적의식과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한 청년이 사하라 사막 종단 마라톤에 도전한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건강했을 때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도전이었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여긴 순간 오히려 자신만의 길이 선명해졌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비슷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열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끼니를 걱정한다”는 말과 “무재주 상팔자”라는 말은, 선택이 많을수록 오히려 삶이 분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에 온전히 헌신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반대로 선택지가 적을 때 사람은 한 가지를 붙들 수밖에 없고, 그 몰입 속에서 깊은 만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은 바로 이 지점을 분명히 짚습니다. 그 각 사람에게 맡겨진 길이 있으며, 욕심을 부려 여러 길을 동시에 붙들려 할 때 우리는 결국 지치고 만족을 잃게 됩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이리야 프리고진은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소산구조’라고 불렀습니다. 낭비되고 흩어질 수밖에 없는 에너지가 특정 구조 안에서 새로운 질서와 생명을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그대로 흩어지게 두지 않고, 나무와 열매라는 생명의 구조로 전환시킵니다. 이 소산구조는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겉보기에 쓸모없고 실패처럼 보이는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구조화될 때 오히려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됩니다. 삶의 혼란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불필요한 선택을 제거하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비로소 분명한 목적이 떠오릅니다. 선택이 많다는 것은 자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갈등과 분산을 낳습니다. 에너지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우리는 어느 것에도 깊이 몰입하지 못한 채 피로해집니다.
반대로 불행과 실패, 제한된 상황 속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그만큼 몰입이 쉬워집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은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을 ‘소박한 선택’이라 부릅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영역을 줄이며, 한 가지에 충실해지는 선택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자기 부인’의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자기 부인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단순하게 하여 진짜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장애나 실패는 그 자체로는 분명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우리를 강제로 제한시키며, 자연스럽게 한 가지에 몰두하도록 만듭니다. 그 몰입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목적을 발견하고, 플로우를 경험하며, 참된 행복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반복적으로 실패를 허락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참된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흩어지고, 비워질수록 집중하게 됩니다.
헬렌 켈러가 장애로 인해 오히려 풍성한 삶을 살았고, 이지선 자매가 사고를 통해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결코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평가를 소유하려는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길을 선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 길에 전력으로 매달릴 때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깊은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었다”는 말씀처럼, 하찮게 여겼던 것들 속에 진짜 능력이 숨어 있습니다. 작은 것을 가볍게 보지 않고, 가진 것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그것은 우리 삶의 중심이 됩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크고자 하거든 작아지라고,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깊이 들어가라고 말입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단순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유가 아니라 몰입입니다. 버림이 아니라 집중입니다.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참된 자유와 기쁨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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