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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비유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느림의 훈련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6.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태복음 13:34)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주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이야기이고, 상징이며, 일상의 언어를 빌린 비유였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교리서가 아니라, 수많은 비유와 상징, 그리고 해석을 요구하는 이야기로 가득 찬 책입니다. 특히 예언서에 이르면, 오늘날까지도 그 의미를 단정하기 어려운 상징과 환상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셨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 의미를 즉각적으로 풀어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듣는 자는 들으라 하셨고, 깨닫는 자는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이 지적 정보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계시임을 보여 줍니다.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직설적인 문장보다는 환상과 상징을 통해 말씀하셨고, 예언자들은 그 말씀을 받은 뒤 여러 날 동안 묵상하며 그 뜻을 헤아려야 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는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시는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마치 사람의 육성처럼 분명하고 명확한 소리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은 오히려 모호하고, 느리며, 곱씹어야 이해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된 방식 역시 환상, 느낌, 세미한 깨달음과 같은 형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꿈을 포함한 환상,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 설명하기 어려운 방향성의 느낌들 말입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결코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하려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비유와 상징은 처음 접하면 늘 어리둥절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혼란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사고 방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고,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에는 언제나 해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음성이 ‘
느낌’이라는 통로를 통해 전달될 때, 우리는 더 큰 긴장을 느낍니다. 느낌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관성을 어떻게 분별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신앙인의 과제입니다. 상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지식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삶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해석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대할 때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그러나 점차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고, 책임이 커질수록 그 내용은 더 복잡해지고, 적용의 범위도 넓어집니다. 느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한 인도하심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미묘하고 섬세한 분별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
이 주관적인 느낌을 어떻게 객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성경 자체가 인간의 주관적인 계시 경험 위에 기록된 책입니다.

바울의 서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본래 개인이 개인에게 쓴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인된 것은 바울이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오랜 시간 분별과 검증을 거친 이후였습니다. 모든 예언도 그러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에게 주어진 주관적인 계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안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정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강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고, 반대로 아주 미미한 느낌이라고 해서 쉽게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일정한 공식이나 법칙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정된 이해가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반응하는 마음을 원하시는지도 모릅니다. 변화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역시 날마다 새로워지는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
행동’입니다. 느낌이 들었을 때, 그것을 붙들고 조심스럽게라도 행동해 보아야 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그 말씀의 성격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걸음을 배울 때 수없이 넘어지듯,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 역시 실패를 통해 자라납니다. 훌륭한 예언 사역자들 또한 처음부터 분명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의심했고, 낙망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더 분명히 들을 수 있게 된 이유는, 느낌에 따라 과감히 순종해 보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훈련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훈련은 실수투성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벽함보다 용기를 보십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여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음성에 둔감해집니다. 반대로 넘어질 각오로 순종하는 사람은,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상징과 인도하심의 방식을 배워 갑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매우 유머러스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상징과 비유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계시며, 때로는 웃음이 나올 만큼 재치 있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재담꾼도 하나님의 유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고백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초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을 때의 한 경험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낯선 곳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지만, 어디가 맛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입니까?” 그때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한 집 앞에 설 때마다 “여기입니까?”라고 묻고, 아니라는 느낌을 따라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음식점 앞에서 “이 집이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곳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때로 아주 사소한 일 속에서도 경험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분별하려는 마음과 순종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배우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분이 얼마나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하고 계신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비유로 다가옵니다. 그 비유를 풀어 가는 여정이 곧 우리의 신앙이며, 묵상이며,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