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에게 불은 문명을 이루게 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고대인의 생존과 종교, 그리고 유대 신앙에 이르기까지 불은 항상 신성한 상징으로 자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막과 성전에서 꺼지지 않는 거룩한 불을 두었고, 이 불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이해했습니다. 초기 기독교 역시 예배 때마다 제단의 촛불을 밝힘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불은 생명을 지키고 음식을 익히며 더러운 것을 태워 정결케 하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불은 추위를 막고 사람과 양들을 모으는 중심이었기에, 불은 곧 생명과 빛, 그리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단순한 상징이 시간이 지나면서 본질로 둔갑되는 비극은 많은 종교에서 반복되었습니다. 고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우주의 근원과 윤리적 정결의 상징으로 보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 ‘불 그 자체’를 숭배하는 배화교로 변질되었습니다.
불교의 불상 역시 처음에는 장식 없는 단순한 수투파(제사 기둥)에서 출발했으나, 시대가 지나며 복잡한 형상과 의미가 덧붙여져 어느새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 또한 오랫동안 형상을 금했지만, 5세기 이후 상징이 교회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결국 십자가조차 ‘회복해야 할 본질’이 아니라 ‘보여야만 하는 상징’이 되어버린 시대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같습니다. 상징은 도구인데, 인간은 도구를 붙잡고 본질로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왜입니까? 형상은 설명을 돕는 수단이지만, 인간의 연약함은 그 형상에 마음을 두고, 결국 본질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불은 상징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불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모세에게는 떨기나무 불꽃으로, 이스라엘에게는 불기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순절에는 “불의 혀”와 같이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불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본질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인위적 불, 촛불, 횃불, 장식용 불빛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미지일 뿐이며, 실체가 아닙니다.
가장 위험한 오해는 상징을 붙잡고 본질을 놓치는 신앙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가장 위험한 현상은 상징에 대한 집착이 본질을 가리는 것입니다. 특히 극단적 종말론과 묵시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계시록과 다니엘서의 상징을 풀기 위해 그 상징 속에서 또 다른 상징을 만들고, 마치 “신화 탐구자들”처럼 상징의 미로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이들은 상징에 머물지만, 정작 십자가의 본질, 하나님의 거룩, 복음의 능력,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무관심합니다. 상징은 본질을 돕기 위해 존재하지만, 상징으로 인해 본질을 잃는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본질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은 불 자체가 아니라 불과 같은 본성, 즉 거룩함·정결함·심판·생명·임재의 실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상에도, 어떤 상징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상징은 사라질 수 있으나,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합니다. 형상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복음의 능력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상징을 붙잡지 말고 나를 붙들라.”
상징이 본질을 지우지 못하도록, 우리가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가 본질에 서는 신앙, 그분만을 경외하는 순전한 신앙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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