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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여성 신비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 사랑으로 하나님을 찾는 영성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30.

오늘날 한국교회는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기도·예배·영적 체험의 열정도 대부분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 자체가 “여성성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감성과 관계, 공감 능력이 중요한 시대에 소비도 여성 중심이고, 교회의 영적 흐름도 여성의 감수성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오늘의 이 변화 속에서 어떤 지혜를 배워야 할까요? 우리는 중세의 여성 신비주의자들, 특히 베긴회의 영성을 돌아보며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12~13세기 유럽의 베긴회 여성들은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적 특권을 뒤로하고 조용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에게도 인간적인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욕구를 억누르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전환시키는 법을 배웠습니다. “
모든 욕구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열망 안에서 새롭게 변형되길 원했다.”

그들의 영성은 단순히 금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욕망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 다시 말해 ‘
욕망의 구속’을 경험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욕망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자기 중심의 힘”으로 흘러갈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승화될지는 우리가 무엇을 가장 깊이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여성 신비주의가 사랑을 영성의 중심 주제로 끌어올렸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
사랑’이라는 주제가 신비주의의 중심으로 떠오른 시점이 바로 이 여성 신비주의자들로부터라는 것입니다. 그 이전의 대부분 남성 신비가들은 사랑보다는 두려움·순종·관상·금욕 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여성 신비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두려움보다 사랑이 더 근원적이다. 영혼의 가장 깊은 기쁨은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사랑 없이는 어떤 영적 체험도 본질을 잃는다." 하데위치는 이를 “영혼의 두 눈”으로 설명합니다. "이성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보게 해주고, 사랑은 그 길을 끝까지 가게 해주는 힘이다." 둘 중 어느 하나도 부족하면 영혼은 온전한 시야를 잃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균형을 잃을 때, 지식만 강조하거나, 감정만 강조할 때, 어떤 혼란이 찾아오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혼의 여정은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흡수되는 길입니다. 헬프타의 게르트루디스, 메흐틸드, 베아트리체 등은 모두 “
하나님과의 신비적 일치”를 사랑의 언어로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상승을 네 단계로 설명했는데, 이는 많은 현대 신학자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영혼 속으로 들어오신다. 둘째, 영혼이 자신 깊은 내면으로 내려간다. 셋째, 그 내면으로부터 하나님께 다시 올라간다. 넷째, 하나님 안으로 흡수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이 과정은 모두 사랑의 에너지로 움직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이 여정은 단지 지적 관찰에 불과합니다.

현대 교회는 ‘
사랑의 영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놀라울 만큼 많은 활동과 열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불길”은 종종 식어 있습니다. 신비주의적 체험은 넘치지만, 그 체험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리로 이어지는가가 문제입니다. 중세 여성 신비가들이 강조한 핵심은 이것입니다. “가장 깊은 신비는 사랑이다.

그들에게 신비는 환상이나 초월적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적 감정의 흥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변형의 과정이었습니다.

여성 신비주의를 통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묵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두려움보다 사랑이 먼저이다.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기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욕망을 억누르지 말고 하나님께로 전환하라. 욕망은 죄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사랑입니다. 사랑과 이성이 함께 있을 때 영성은 온전해진다. 감정만으로도, 지식만으로도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모든 신비적 체험은 사랑으로 열매 맺어야 한다. 경험은 목적이 아니라 사랑으로 변형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영성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영혼이 하나님 안으로 흡수되는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다양한 은사와 체험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베긴회 수녀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가?” 사랑 없는 신비는 공허하고, 사랑 없는 영성은 왜곡됩니다. 하나님은 단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사랑의 근원이시며, 그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당기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그 사랑 앞에 나아가 우리의 욕망, 우리의 상처, 우리의 깊은 갈망까지 모두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새롭게 빚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