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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주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는 기술 - 영적 감정의 메마름을 넘어 은혜를 확장하는 삶에 대하여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8.

우리 중 어떤 이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말씀 속에서 새롭고 깊은 의미를 발견해 그것을 설교나 가르침으로 전하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똑같이 기록된 성경, 누구나 펼쳐 읽을 수 있는 말씀임에도 사람마다 은혜의 깊이가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깊은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은 문학적 감수성의 차이가 아니라, 그만큼 묵상하고 의미를 곱씹는 노력을 더 많이 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오래 붙들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비추어 보고, 그것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인내하며 기다린 사람에게 의미는 점점 깊어집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깊은 감흥을 잘 경험하지 못합니다. 꿈을 꾸면서도 꿈의 의미를 거의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말씀도 그냥 읽고 지나갈 뿐 마음에 불이 붙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주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는 방법을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으면, 말씀을 통한 깨달음도, 꿈과 환상을 통한 통찰도 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이 메마르면 은혜도 메마릅니다. 우리는 사랑에도, 신앙에도 금방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존재입니다. 청춘 남녀가 처음 교제할 때는 작은 연락에도 설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이 일상이 되어버리듯이, 주님과의 만남도 쉽게 ‘습관적’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감정은 훈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메마르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통의 일을 보통으로 지나치지 않고, 의미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처음 거듭남의 감격이 시간이 지나며 흐려지는 이유는, 감격이 줄어서가 아니라 감격을 확장시키는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주님과의 친밀함도 자연적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
의미를 확대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동하고 흥분하는 사람을 보며 ‘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친밀함 앞에서는 오히려 그런 감수성이 유리합니다. 작은 사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마음속에서 부풀리는 사람이 은혜를 깊이 누립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일상의 평범한 장면을 비범한 언어로 재구성합니다. 일상은 같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감동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미묘한 감흥을 그냥 “
느낌”으로만 두면 금방 사라지지만, 그것을 언어로 정리하고, 묵상으로 확장하고, 삶의 기억들과 연결시키면 그 감동은 훨씬 더 오래, 훨씬 더 깊어집니다.

은혜가 커지려면 ‘
연상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전쟁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눈물 나는 영화를 보며 치유를 경험했던 이유는, 영화 속 장면이 자신들의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연상(연결)과 공감이 감정을 폭발시킨 것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내 삶의 경험과 연결되지 않으면 감동은 깊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본문을 읽어도, 내 기억·내 아픔·내 기쁨과 연결되지 않으면 금세 잊혀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을 해야 합니다. 말씀, 경험, 감정 이 세 가지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떠오르는 기억을 연결시키고, 그 기억이 다시 말씀 속 의미를 확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감의 공명이 일어나면 마음은 깊게 흔들리고, 감격은 오래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흥은 때로 압축 파일처럼 우리 안에 담겨옵니다. 그 감동을 말, 묵상, 상상, 감정의 언어로 풀어낼 때, 그 은혜는 더욱 커집니다. 말재주 있는 사람이 영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듯, 은혜도 풀어낼수록 커지고, 설명할수록 깊어지고, 묵상할수록 선명해집니다. 은혜를 밋밋하게 받으면 금방 잊혀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풀리고 재해석하고 연결할 때, 그 은혜는 우리 안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은 ‘
기술’입니다. 우리는 종종 “가만히 있어도 주님이 강하게 감동을 주시겠지”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는 일방적 기적이 아니라, 사귐의 기술, 친밀함의 훈련입니다. 연애에도 기술이 있듯, 부부 사이에도 섬세함이 필요하듯, 하나님과의 친밀함에도 우리의 참여와 감정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감동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신앙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은혜를 확장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감동을 어떻게 다루는가입니다. 작은 은혜에도 의미를 확대시키고, 경험과 기억을 연결하여 공명을 일으키며, 감정을 깨우고, 묵상으로 은혜를 확장시키는 사람은 주님과의 친밀함의 깊이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결코 자동적이지 않습니다. 관계는 기술이며, 기술은 훈련될 수 있습니다. 그 기술을 익히는 사람이, 주님과의 사귐에서 늘 새로운 감격을 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