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행 14:15)
사도들이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외쳤던 고백,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입니다”(행 14:15)는 짧은 문장 속에 인간 이해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엘리야를 말할 때 야고보 역시 “그도 우리와 같은 성정의 사람이었다”(약 5:17)고 말합니다. 성경은 거룩한 사명자들도, 놀라운 기적을 행했던 선지자도 결국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성정’에 대응하는 헬라어 단어는 단순히 “같은”이라는 뜻을 가진 omoiopathes뿐입니다. 특별한 철학적 개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를 번역한 우리말 “성정(性情)”은 동양의 오랜 마음의 철학, 곧 성리학의 개념을 바탕으로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신학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지혜가 이 지점에서 만납니다.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심(心), 성(性), 정(情)이라는 세 층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성(性)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본성, 가능성, 근본적 기질입니다. 정(情)은 겉으로 드러난 감정과 반응입니다. 심(心)은 이 둘을 담고 있고 실제로 움직이는 중심입니다.
이 구조는 사실 성경의 인간 이해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고 말하며, 예수님은 마음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정(情)에서 나오고, 그 정은 성(性)에서 나오며, 그 모든 흐름은 마음(心)에서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마음의 근원을 다루시는 분입니다.
맹자는 마음 안에는 네 가지 선한 단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측은(남을 불쌍히 여김), 수오(부끄러워함), 사양(배려함), 시비(옳고 그름 판단). 이것이 사단(四端)입니다. 이 단서들이 자라나면 인·의·예·지로 자라납니다. 반면 칠정(七情)은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워함, 욕구라는 인간의 본능적 감정입니다. 이것들은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인간이 갖고 태어난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우리와 같은 성정”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칠정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마음은 조용할 때는 성(性)으로 잠들어 있다가, 사건을 만나면 발(發)하여 정(情)으로 터져 나옵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받은 믿음의 거장 같았지만, 이세벨의 협박 한 마디에 사막으로 도망하며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절규한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 이 말이 바로 이 뜻입니다.
성리학에서 마음을 이해하는 핵심은 바로 발(發)이라는 개념입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성(性)이 사건을 만나 움직일 때, 그것이 정(情)이 됩니다. 성은 가능성이고, 정은 그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발(發)의 순간이 우리 삶에서 너무도 실제적입니다. 누군가 한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 억울함이 치밀고, 부끄러움이 솟고, 자존심이 상하고,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불쌍함이 솟구치고, 한순간 생기는 판단과 반응들…
이 모두가 발한 정(情)이며, 하나님께로 향하느냐, 아니면 죄의 충동으로 흐르느냐는 그 마음이 무엇에 붙들려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망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마음의 발동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우리의 삶 전체를 결정합니다.
성리학의 목표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한 본성을 회복하라.” 그러나 성경은 이 지점에서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끕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온다.” 성리학은 인간 안에 선한 본성이 있다고 보았지만,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무너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수련이나 도덕적 노력만으로는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는 길은 단 하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줄 것이라.”(겔 36:26) 사람의 마음에 대한 동일한 관찰을 하면서도, 성경은 인간의 죄성을 보고, 성리학은 인간의 가능성을 바라봅니다. 그 차이가 결국 복음의 필요성을 갈라내는 지점입니다.
사도들은 이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복음이 요구하는 눈높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연약하고 흔들립니다.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우리처럼 불안해하며,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시험도 받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겸손한 고백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자의 첫 자세입니다.
마음의 움직임을 하나님께 가져오십시오. 첫째, 드러나는 감정(정)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발’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그 정을 어디로 이끄느냐입니다.
둘째, 모든 발(發)은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분노가 발할 때, 두려움이 발할 때, 욕심이 발할 때, 부끄러움이 발할 때,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주님, 지금 제 마음이 이렇게 움직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 마음이 치유되는 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도 나와 같은 성정”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상대의 감정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이유는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의 구조, 같은 유약함, 같은 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한 마디 묵상이 우리를 깊은 공감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도 나와 같은 성정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왜 사도들에게 “우리는 여러분과 같은 성정의 사람”이라고 말하게 하셨을까요? 아마도 이런 뜻일 것입니다. “너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신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아시고 너희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을 전하려 한다.” 복음은 완벽한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연약한 사람의 고백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 쉽게 발하는 정,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성(性)의 가능성을 붙들어 새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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