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세기 영국은 전쟁과 흑사병, 기근과 폭동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두려움 속에 살아가야 했고, 고통은 곧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죽음의 문턱에서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녀가 바로 놀위치의 줄리안입니다.
서른 살의 줄리안은 불치의 병으로 몸이 말라가며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숨조차 쉬기 힘든 그 병상에서, 그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환상은 너무 심오하고 이해할 수 없어 20년 동안 마음속에서 씨름해야 했습니다. 놀랍게도, 1373년 5월 13일, 그녀는 갑자기 병에서 나아 걷게 되었고, 그날 본 경험은 그녀의 평생의 사역을 이루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긴 세월 동안 그 환상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 이해할 지혜를 구하며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씨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체험을 글로 정리하여 영국 최초의 여성 저자가 된 책,『신적 사랑의 계시』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그 시대의 교회는 고난을 거의 항상 하나님의 징벌로 이해했습니다. 백성들은 전염병과 전쟁의 고통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줄리안은 전통과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이 아니라, 더 깊게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이끄는 은혜의 길이다."
그녀의 이 말은 당시로서는 너무도 파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절망을 껴안고, 그 어둠 속에 작은 빛을 비추어 주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줄리안은 말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두려움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배우게 하는 은혜의 통로라고 말입니다. 이 고백은 훗날 영국 신학에서 “만민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영지주의가 판치던 시대, 줄리안은 ‘육체’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줄리안이 살던 시대는 고난이 너무 심하니, 사람들은 몸과 세상을 부정하고 영적인 도피에만 집착하는 영지주의적 분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줄리안의 신비주의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몸을 무시하지 않았고, 세상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현실적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줄리안에게 영과 육은 서로 보완하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질서였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몸의 고통은 영혼의 표현이며,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이 고백은 그녀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죽음의 고통을 통과한 경험에서 나왔기에 더욱 설득력 있습니다.
줄리안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법을 매우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의 품에 안기며, 하늘에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보고, 충분히 느끼고, 영적으로 듣고, 향기롭게 들이쉬고, 달콤하게 맛보게 될 것이다.” 줄리안에게 하나님은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경험하는 실제적 사랑입니다.
신비주의적 체험은 본질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줄리안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표현될 수 없는 은혜를 글로 담아내려 했습니다. 그녀의 신비체험은 감각적 환상만이 아니라, 이미지보다 더 깊은 직관과 영적 깨달음을 동반한 지적 신비주의였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비합리적인 체험을 말한 것이 아니라, 체험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읽어내는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중세 여성 신비가들인 테레사, 카타리나, 줄리안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길에는 ‘짧은 길’이 없다." 그들은 응답이 없는 기도로 10년, 20년을 견뎠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깊이 묵상했으며, 서두르지 않고 오래 기다림으로써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신비의 문을 통과했습니다. 줄리안 역시 그 환상을 20년 동안 붙들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오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그녀에게 ‘말씀이 아닌 방식’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숨겨진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영적 경험이나 고난을 너무 빨리 해석하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지?”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 건가?” “이 고통은 무슨 의미인가?” 하지만 줄리안은 말합니다. "당장의 해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깊이 품고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서 숙성시키는 것이다."
바울이 반복되는 고난 속에서 더 깊은 영적 비밀을 깨달았듯, 줄리안 역시 오랜 관조 끝에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한 기억, 고통스러운 경험, 낙심되는 사건 그 어느 것도 그냥 버려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이 숨기신 보석이 들어 있으며, 그 보석을 발견하는 책임은 결국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겪는 고통이나 혼란도 줄리안이 경험했던 것처럼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언젠가 하나님 안에서 깊은 의미를 드러낼 것입니다. 고통이 곧 벌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사랑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그 사랑의 신비를 서두르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조용히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침묵 속에서 당신에게만 들려주시는 깊은 진리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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