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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말씀을 흐릴 때 오는 저주 - 하와의 실수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21.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하나님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합니다. 창세기 3장은 단순히 인류 최초의 타락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모든 죄의 본질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발전하며,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정밀하게 보여주는
‘영적 경고문’입니다. 그 핵심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고’, ‘제하는’ 행위가 있습니다.

하와는 “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데도, 그녀는 ‘섭섭함’과 ‘의심’이라는 감정을 토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했습니다. 이것이 첫 ‘더함’입니다. 그리고 ‘죽을까 하노라’ 라고 확정적인 경고를 모호하게 바꾼 것도 ‘제함’입니다. 진리를 흐리면, 결국에는 거짓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마음 상태가 됩니다.

이 작은 왜곡은 곧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부정하는 마귀의 ‘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 앞에서 무너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진리를 모호하게 붙들면, 거짓 앞에서 흔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습니다. 살짝 왜곡합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동산의 각종 나무는 네가 임의로 먹되”라고 하신 말씀을 “동산 모든 나무를 먹지 말라 하더냐”라고 바꾸어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신가, 억압의 하나님인가?”

이것이 바로 ‘
더함과 제함’의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어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더하는 자는 재앙을 더하고, 빼는 자는 생명나무에서 그 몫을 제하신다”고 계시록은 경고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
돕는 배필’은 단순한 가정적 파트너가 아니라 생명나무에 이르게 하는 동역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와는 그 역할을 거꾸로 수행합니다. 그녀는 생명으로 이끄는 자가 아닌, 죽음으로 이끈 자가 되었습니다. 이 상징은 교회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말씀으로 생명에 이르도록 돕는 자리에서 말씀을 왜곡해 사람을 미혹하면, 교회는 살리는 자가 아니라 죽이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돕는 배필은 하나님이심을, 곧 ‘
에제르’이신 성령님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정확히 가르치고, 진리로 인도하는 유일한 조력자이십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주장이나 욕망을 뒷받침하기 위해 ‘
살짝’ 바꾸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십일조 하면 부자 된다”, “목사는 기름 부은 자이므로 건들면 삼대가 저주받는다”, “빚을 내서라도 헌금하라” 같은 말들이 진리를 ‘더하고’ ‘덜어내는’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사람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모독입니다. 거룩한 말씀을 수단으로 삼는 그 순간, 그 설교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로 서게 됩니다.

말씀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삶으로 확인하며 철저히 검증해야 합니다. 바울의 설교조차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펼쳐가며 날마다 확인했습니다. 오늘날 이단과 사설이 창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식별력 없이 듣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조금이라도 흐리면 생명력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건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와는 처음부터 마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대한 애매한 이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왜곡된 인식, 그리고 자기 중심의 해석이 결국 불순종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내 감정, 내 생각, 내 경험이 아니라, 오직 말씀 그 자체에 생명을 두겠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따라 걷는 자만이 맛볼 수 있습니다. 이 길을 막는 자는 마귀가 아니라, ‘
더하고 뺀’ 내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그 빛 앞에 오늘도 우리의 말씀 이해가, 설교가, 가르침이, 해석이, 정확하고 순전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