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모난 말 하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분위기를 깨지 않으며, 가능한 한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마음에 걸려도 “괜찮아요”, 힘들어도 “제가 할게요”라는 말을 먼저 내뱉습니다. 문제는 그 말이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서, 혹은 미움받기 싫어서 나온 말일 때입니다.
한 직장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늘 팀에서 가장 먼저 움직였습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나섰고, 회의가 길어지면 묵묵히 정리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사는 “역시 믿음직하다”고 말했고, 동료들은 “고맙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뿌듯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느낌, 인정받는다는 감각이 그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어느새 그의 ‘자발성’은 당연함이 되었고, 그의 희생은 업무 분담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반복되는 야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네가 좀 해줄 수 있겠니?”라는 말 앞에서 그는 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만 하지? 왜 아무도 나를 대신해 주지 않지? 그때부터 일은 일이 아니라 억울함이 되었고, 회사는 일터가 아니라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더는 못 하겠다”는 말과 함께 회사를 떠났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나쁜 결말로 끝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첫 번째 이유는 타인에 대한 원망입니다. 문제는 남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일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그는 사실 처음부터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정받고 싶었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 선택이 부담이 되자, 그 부담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도 선하게 마무리될 수 없습니다. 선의로 시작했지만, 마음속 동기가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착한 사람은 손해 본다”는 믿음입니다. 이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양보와 배려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는 손해 보고 있다”는 계산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계산이 들어간 순간, 그 행동은 더 이상 자유로운 선택이 아닙니다. 의무가 되고, 짐이 되고, 결국 분노가 됩니다. 사실 손해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손해라고 느끼면서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무는 선택입니다. 그렇게 느낀다면, 애초에 그 역할을 맡지 않는 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함’과 ‘책임감’을 혼동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 성숙한 어른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단단한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존중입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소진시키는 삶은, 결국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나 자신마저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를 희생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 관계는 이미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진짜 좋은 마음은 억울함이 남지 않습니다. 원망이 쌓인다면, 그것은 선의가 아니라 무리한 자기부정의 신호입니다. 이제는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정말 원해서 이 일을 하는가,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 나를 내주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솔직해질 때, 좋은 마음은 비로소 좋은 결말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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