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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보이지 않는 흐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6.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에베소서 6:12)

요즘
“수맥이 흐른다”는 말에 예민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집을 보러 가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여기 수맥은 없나요?”가 되었고, 침대 위치를 바꾸고, 바닥에 동판을 깔고, 벽에 무언가를 붙여 놓은 집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 한동안 수맥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과학적 결론은 아직 없다”는 단서를 붙이면서도 수맥 위에서 살다가 병이 나았다는 수많은 사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결론보다 사례에 더 쉽게 설득됩니다. 어떤 가톨릭 사제들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했고, 그 영향을 받아 개신교 성도나 목회자 가운데서도 수맥의 실재와 위험성을 인정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수맥 탐지와 차단을 표방하는 각종 제품들이 시중에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다우징(dowsing)’입니다.

다우징을 하는 사람은 보통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Y자 모양의 버드나무 가지이고, 다른 하나는 L자 형태의 금속 막대, 이른바
‘엘로드’입니다. 수맥이 흐르는 지점에 이르면 버드나무 가지가 땅을 향해 휘어지고 엘로드는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서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그 설명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기(氣)와 땅속 물의 에너지가 공명하여 반응을 일으킨다.” 혹은 “버드나무는 원래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히 반응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수많은 객관적 실험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대표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전날, 눈을 뜬 상태에서 다우징을 하여
“여기가 수맥입니다”라고 표시해 둔 곳을 다음 날 같은 사람이 눈을 가리고 다시 지나가게 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울 만큼 단순했습니다. 엘로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은 여러 사람, 여러 장소에서 반복되었고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는 얻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수년간 수맥을 찾아다녔던 한 가톨릭 신자는 이 실험 이후 다우징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믿고 싶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는 고백과 함께 말입니다. 과학은 말합니다. 엘로드가 움직이는 이유는 막대가 아니라 사람의 손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수맥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지하수의 흐름입니다. 사람의 몸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 몸에는 굵은 혈관도 있고, 가는 모세혈관도 있습니다. 그러나 피는 혈관 속에만 흐르지 않습니다. 세포 사이로 스며들고, 혈관이 없는 부위에서도 상처가 나면 피는 흘러나옵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내리면 물은 지표에서 지하로 스며들고, 그 물은 다시 다른 곳에서 솟아오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모세관 현상입니다.

흙은 미세한 광물 입자들의 집합체이고, 그 사이의 수많은 틈으로 물은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물이 많이 모이는 통로는 우리가 말하는
‘수맥’이 되지만, 그 주변 역시 미세한 물의 이동이 끊이지 않습니다. 즉, 암반 지대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물이 흐르지 않는 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수맥 중, 왜 어떤 곳만 문제입니까?”

수맥이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에는 과학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람이 아플 때, 설명 가능한 원인보다 설명해 주는 원인을 더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으로 이사한 뒤 계속 몸이 아프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집이 문제일지도 몰라.” 그리고 수맥이라는 말이 그 불안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실제로 수맥을 피했다고 믿은 뒤 몸이 좋아졌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것을 심리적 영향, 즉 플라시보 효과로 설명합니다. 믿음은 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어디를 향하느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질병과 불행의 모든 원인을 귀신으로 돌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 존재의 실재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귀신은 전능하거나 편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타락한 천사로서 수가 제한되어 있고, 특정 영역과 장소를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성경과 교회사, 그리고 수많은 선교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지역은 유독 어둡고, 어떤 집은 들어오는 사람마다 무너집니다. 사고가 반복되는 장소, 비슷한 질병이 되풀이되는 집, 이유 없이 재산이 흩어지는 공간, 모든 것을 영적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영적인 차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수맥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영적 존재의 영향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이 더러우면 청소합니다. 몸이 아프면 치료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거처는 어떠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다.” 영적 청결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립니다. 기도와 회개, 말씀으로 삶의 영역을 다시 주님의 통치 아래 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그 땅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영역을 마귀의 영향에서 분리하라는 강력한 예표입니다.

수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 무지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모를 때 가장 쉽게 역사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알고, 주님의 법정으로 나아올 때 재판장이 되어 주십니다. 불법으로 빼앗긴 건강, 불법으로 무너진 삶의 영역은 되찾아야 합니다. 그 시작은 막대를 드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땅을 정결하게 하고, 삶을 정결하게 하고, 주님의 통치 아래 다시 세울 때 우리의 삶은 다시 평안을 회복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흐름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성도가 선택해야 할 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