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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평범함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선택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태복음 13:44)

사람은 종종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을 구별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구별의 실패는 생각보다 큰 손실을 가져옵니다.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모두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삶을 보면, 별다를 것 없는 행동이나 모습이 어느 순간 그 사람을 특별한 자리로 이끕니다. 반대로 똑같은 행동을 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한 정치인의 대학 시절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싸구려 군복을 검게 물들여 사계절 내내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에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강한 자기 정체성’을 읽어냈고, 뜻밖에도 그를 학생회장으로 밀어주었습니다. 그는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현실적 계산으로 출마했지만, 학생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학교, 같은 시기에 비슷한 차림을 하고 다녔던 또 다른 학생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검은 군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4년을 다녔지만, 누구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옷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행동이었지만, 의미가 부여된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의미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의 말과 행동은 쉽게 인정받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의 노력은 종종 무시당합니다. 이 불편한 현실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설교하시며 엘리야 시대의 사렙다 과부와 엘리사 시대의 나아만 장군을 언급하셨습니다. 수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은혜를 입은 사람은 한 사람이었고, 수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고침을 받은 사람 역시 한 사람이었습니다(눅 4:27).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작위적이거나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특별한 은혜는 언제나 예외적인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일반화하려 할 때, 신앙은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만 보았습니다. 너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특별함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고향을 떠나셨고, 그들에게는 은혜가 아닌 걸림돌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선택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무 이유도 없이 선택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자리에는 늘 어떤 독특한 접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행함은 공로가 아니며, 의도적인 계산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고침을 받은 배경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그 소녀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결과로 생긴 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우연을 통해 나아만을 은혜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나아만에게 그 소녀는 평범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치유로 이어지는 결정적 연결고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평범함은 능력이 됩니다. 삼손의 손에 들린 나귀 턱뼈는 특별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들판에 널려 있는 수많은 턱뼈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그것은 능력이 되었습니다. 한 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로는 초라했지만, 주님 앞에 내어놓아졌을 때 수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들려졌느냐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 의미 없어 보이는 선택들이 하나님의 눈에 발견될 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았다”는 속담은 우연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연 속에는 하나님의 필연이 숨어 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보며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사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안목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모든 일을 정확히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영적 안목이 없는 지도자는 방향 없이 행동하다가, 가끔 요행처럼 은혜를 경험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감추어진 보화에 비유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밭을 밟고 지나가지만,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보화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지만, 가치를 알아본 사람만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임한 특별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랑할 수는 없지만, 결코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길 때, 우리의 눈은 밝아집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단순한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이 됩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삶 속에 너무 평범해서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이 있습니까? 우연히 만난 사람, 아무 생각 없이 한 작은 행동, 사소한 결정 하나가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눈에 들어갈 때, 그 평범함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십니다. 그리고 그 발견의 자리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영적 성숙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