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태복음 7:21, 24)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이 비유를 잘 압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순종의 삶이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행함 없는 믿음의 삶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비유는 행함을 많이 했는가, 적게 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기초로 삼고 살아왔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집은 두 집 다 멀쩡해 보였습니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차이를 몰랐습니다. 문제는 외형이 아니라 기초였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분명 행함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가는 냉혹합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주님의 이름으로 한 모든 행위가 왜 ‘불법’이 되었을까요?
예수님은 분명히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은 명확히 답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다.”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무언가를 더 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완전히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가장 능동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 믿음은 자기 부인의 선언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 오직 주님만이 하신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은 이후 선악을 판단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선을 정하고, 자기 기준으로 의를 세웁니다. 그 결과, 인간의 모든 행위는 쉽게 자기 영광을 위한 수단이 됩니다. 선행도, 봉사도, 헌금도, 심지어 사역마저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손으로 생명나무에 도달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막혀 있습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열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이때의 ‘행함’은 열심이나 성취를 말하지 않습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나의 공로를 기초로 삼지 않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행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점점 더 분명히 알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반석 위에 지어진 집은 때로는 모래 위의 집보다 덜 화려해 보일 수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평소에는 단단해 보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와디’처럼 건기에는 훌륭한 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비가 오면, 그곳은 곧 물길이 됩니다. 심판의 날, 자기 영광을 기초로 삼은 모든 행위는 그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 무너짐이 크다는 말은 그만큼 자기 의에 대한 확신이 컸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눈에 띄는 성취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가 나를 더 이상 자랑하지 못하게 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익어갑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의 길에서는 내가 착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줄어듭니다. 오히려 나의 추악함이 더 선명해집니다. 그때 비로소 은혜가 은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나의 신앙은 여전히 나를 증명하기 위한 건축은 아닌가? 내가 붙들고 있는 기초는 예수의 십자가인가, 아니면 나의 열심인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삶은 언제나 무너지는 나를 인정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오직 은혜만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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