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들을 귀는 없었습니다. 구주가 오셨지만 그분을 영접하는 이는 드물었고, 창조주께서 오셨으나 머무르실 자리는 없었습니다.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이 비극적인 장면은,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지만, 정작 그 고요함과 거룩함의 주인이신 예수님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어느새 분위기를 맞추는 절기가 되었고, 좋은 사람을 떠올리며 선물을 나누는 날로만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 영원하신 분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날이며, 거룩하신 분이 죄인들의 자리까지 낮아지신 날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감격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말 구유에 누이신 하나님의 겸손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무디고 무관심하지는 않은지 묻게 됩니다.
헤롯은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권력으로 여기며, 그 영광을 빼앗길까 두려워 거짓과 불의로 반응했습니다. 그의 시대는 깊은 밤과 같았고, 그 밤은 빛을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셨으나, 우리 마음에는 여전히 그분이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세상 생각, 욕심, 염려와 자기중심성으로 가득 찬 마음은 말 구유만도 못한 처지가 되곤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오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초라한 자리에도 찾아오셔서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 말 구유만도 못한 제 마음에 오셔서 이 어둠을 몰아내 주옵소서.” 온 인류와 깊이 상관된 날 크리스마스는 단지 교회만의 절기가 아닙니다. 온 인류의 역사와 운명을 가르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선언이며, 구원의 문이 열렸다는 하늘의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날입니다. 감사가 넘쳐야 할 날이며, 회개와 경배가 어울리는 날입니다. 성육신의 은혜 앞에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새해를 향한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한 번 오신 것으로 모든 이야기를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두 번째 오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이 시대 속에서 세상에 눈 멀고, 영적으로 잠든 채 주님을 맞이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과거를 기념하는 날인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날입니다. 심판하실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기억하며, 자신을 살피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날입니다. 흰 옷을 입고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두 번째 오실 주님과 친밀한 관계의 옷을 입는 날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새해를 소망하며 이 크리스마스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다시 깨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형식적인 절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오셨을 때 듣는 귀가 열리고, 구주가 오실 때 기쁨으로 영접하는 마음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세상으로 더 나아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발걸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 구유에도 오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오시기를, 그리하여 이 크리스마스가
참으로 복되고 두려운 은혜의 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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