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 3:14)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는 다시 땅에 퍼져 각기 다른 지역과 민족을 이루며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셈의 후손인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십니다. 이 선택은 우연이 아니며, 인간의 가능성이나 자질에 근거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이며, 일방적인 은혜의 선택이었습니다.
함의 족속이 아니라 셈의 후손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는 이미 노아 언약을 통해 암시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덮어주심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인간의 힘과 문명,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했던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구원이 흘러가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심으로, 그를 통해 열국이 복을 받게 하려는 구속사의 큰 흐름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을 떠올릴 때, 이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아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고, 심지어 백 세에 얻은 아들까지 바칠 만큼 순종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 그래서 어느새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두려움을 버리고 무조건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메시지로 바뀌어 전해집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고, 결단이 있어야 하며, 더 큰 희생을 드려야 하늘의 복이 임한다는 식의 강요 섞인 권면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그 ‘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시 소떼와 양떼가 늘어난 것일까요? 재물이 풍성해진 것일까요? 그러나 그 시대의 애굽 왕 바로와 비교해 보면, 아브라함의 소유는 한없이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브라함 언약의 본질이라면, 성경은 애굽의 왕들을 훨씬 더 복 받은 자로 기록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복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이방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의 복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복은 아브라함 개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미리 전해진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주셨고, 그 복음의 핵심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의 행동, 어떤 결단과 순종으로 인해 복을 받은 것이라면, 그것은 율법에 속한 것이지 믿음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가 분명히 말하듯,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결국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완전한 행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율법의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친히 짊어지시고, 나무에 달려 저주가 되심으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의 결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까요?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르심은 낭만적인 여행의 초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향과 가족을 떠난다는 것은 보호를 포기하는 것이었고, 생존을 담보로 한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섬기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을 섬기던 사람이었고,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의 신앙은 곧 가족 전체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계시로 찾아오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 경험은 인간을 무너뜨릴 만큼 압도적입니다. 아브람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아들의 변화를 보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지만, 하란에서 멈춥니다. 결국 데라는 그곳에서 죽고, 아브람은 다시 한 번 부르심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기를 부르신 분이 누구인지,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두려움, 고난을 겪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을 통해 알아가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후손의 약속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땅은 하나님 나라로, 후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백성으로 모아집니다. 그래서 신약은 증언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분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성공이 아니었고, 위대한 업적도 아니었습니다. 그 복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은혜였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시는 분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실함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그것이 아브라함의 복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동일한 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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