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마가복음 12:44)
예수님은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 계셨습니다. 누가 얼마나 넣는지를 계산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지를 보고 계셨습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눈에 띄는 액수였고, 소리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그들 위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한 가난한 과부가 다가와 두 렙돈,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거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돈을 넣고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은 그 순간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여인이 가장 많이 넣었다.” 이 말씀은 언제 들어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가장 적게 넣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입니다. 여기에는 계산법이 다릅니다. 우리가 익숙한 산술이 아니라, 존재를 재는 계산입니다.
이 장면을 읽을 때 우리는 쉽게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도 더 많이 드려야겠다.” 하지만 그렇게 읽는 순간, 본문은 곧바로 율법이 됩니다. 그리고 복음은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헌금의 모범생”으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칭찬하신 것은 헌금의 열심이 아니라 그 여인이 서 있는 삶의 자리였습니다. 그 여인은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떼어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삶을 지탱해 주는 마지막 끈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 끈을 놓으면 오늘의 식사도, 내일의 안전도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주님은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으로 살고 있느냐?”
헌금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헌금은 언제나 오해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헌금을 하나님께 도움을 드리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나, 복을 받기 위한 투자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이 인간의 돈을 필요로 하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늘 묻습니다. “네가 나를 의지하느냐, 아니면 네가 붙들고 있는 그것을 의지하느냐.” 헌금은 하나님을 돕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내가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지가 그 자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헌금은 액수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헌금함에 들어간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이 내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느냐인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언제나 제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제물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제물은 한 분을 가리켰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양과 소는 죄를 대신 짊어질 참 제물을 예표했고, 신약에 이르러 그 실체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셨고 자기 자신을 전부 내어주셨고 단 한 점도 남기지 않고 십자가에서 바쳐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헌금은 “내가 무엇을 드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누구로 말미암아 살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헌금은 나를 드리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은 내 삶의 소유권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나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값 주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헌금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내일의 생존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신뢰합니다.” 가난한 과부는 그 신앙고백을 말로 하지 않았습니다. 삶으로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은 이 땅에서 완성될 수 있는 이상 사회의 모델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국의 삶을 잠시 비춘 그림자입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만이 나의 안전이며, 하나님만이 나의 기업이며,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바로 그 천국의 삶이 이 땅에 잠시 스며든 한 장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그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헌금 액수가 커서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옵니다. 십의 십이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사람은 십일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합니다. 기쁩니다. 자유롭습니다. 반대로 억지로 드리는 헌금은 드리는 순간부터 마음에 계산이 시작됩니다. “이만큼 했으니, 이제 하나님도 나를 알아주셔야 한다.” 그것은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거래 시도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헌금을 통해 자신을 부유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돈이라는 이 세상의 힘을 조금씩 내려놓도록 가르치십니다. 그 시험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아, 정말로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시구나.” 그래서 헌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의 백성으로 훈련시키는 방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느냐?” 헌금은 그 질문 앞에 말없이 내놓는 나의 대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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