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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비유 - 개와 돼지 그리고 그들에게 던져진 진주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8.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복음 7:6)

이 말씀은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예수님이 왜 사람을 개와 돼지에 비유하셨을까? 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라는 말씀일까?아니면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경고일까? 그러나 이 말씀을 그렇게 이해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 많이 오해한 것입니다. 복음은 본래 죄인을 위해 주어진 것이고, 교회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경고하신 “
개와 돼지”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 비유는 마태복음 7장 한 절만 떼어 읽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먼저 “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으로 살아갈까 하는 질문은 우리에게 너무도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염려 자체가 이미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신호라고 하십니다.

염려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살도록 지어진 존재가, 스스로를 지켜보겠다고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인간은 자기 생존을 자기 손에 쥐려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개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한 집단적 존재가 아니라, 각자 자기 안전과 자기 행복을 챙겨야 하는 불안한 개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쌓습니다. 재물, 능력, 도덕성, 성취, 명성, 심지어 종교적 열심까지, 그것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충분히 쌓이지 않을 때, 인간은 염려합니다. 염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겠다는 나라에서 반드시 생겨나는 증상인 것입니다.

염려 뒤에 이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은 곧바로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일까요? 자기 존재를 스스로 지켜야 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교는 곧 판단과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비판은 정의로 포장되지만, 그 속에는 거의 언제나 자기 영광을 지키려는 본능이 숨어 있습니다. “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다.” “나는 저 정도로는 타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신앙생활을 한다.” 이것이 바로 눈에 들보를 끼운 채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찾아내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금하신 비판은 분별이나 진리 수호가 아닙니다. 자기 의를 근거로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자기중심적 판단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다시 묻게 됩니다. “
개와 돼지”는 누구인가? 그들은 단순히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의에 사로잡혀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자기 열심으로 자신을 의롭다 여기며,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은혜를 던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 은혜는 감사가 아니라 발로 밟힘을 당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전한 자는 오히려 공격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자기 의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거룩한 것, 진주는 성령,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실제로 알게 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은 자기 가능성을 붙든 손으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 의를 내려놓지 않은 마음에는 머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에게는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차별이 아니라, 본질의 문제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은 흔히 도덕 교훈으로 오해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인간의 윤리를 가르치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대접을 받기 위해 먼저 우리를 대접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셨고, 자기가 이루신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께 드릴 대접은 단 하나입니다.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언가를 해내는 결심이 아니라 내 가능성을 포기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달라집니다. 더 착해져서가 아니라, 더 겸손해져서입니다. 비판이 줄어들고, 염려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자기 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서서히 이 세상에서 정이 떨어집니다. 그 과정이 바로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
대접”인 것입니다.

혹시 나는 은혜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의를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나는 복음을 말하면서도 그 복음으로 나를 자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개와 돼지를 가려내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자기 의의 나라를 폭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묻고 계십니다. “
너는 아직도 네가 옳다고 믿느냐, 아니면 이제 정말 은혜가 필요하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