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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비유 - 소금과 빛(구별된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영광)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너무 익숙해, 우리 대부분은 그 뜻을 도덕적 선행 정도로 이해해 왔습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며, 사회에 기여하면 ‘빛과 소금’이 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실제로 많은 설교나 주석이 그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히 윤리적 모범을 추구하는 말씀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요15:18)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요16:33)

만약 우리가 세상적 기준의 선행을 많이 하면 세상이 칭찬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드러날수록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드러내야 할 ‘
’과 ‘소금’은 세상이 박수치는 방식의 착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착함입니다.

착한 행실’은 세상적 선행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16절에서 말하는 “착한 행실”의 헬라어는 '칼로스(Kalos)'입니다. 단순히 윤리적·도덕적 선을 의미하는 단어 ‘아가토스(Agathos)’보다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특별한 상황에서 사용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
선한 목자(Kalos)”라 하셨습니다(요 10:11). 바울은 성도 안에 “착한 일(Kalos)”을 시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빌 1:6). 즉 “착한 행실”이란 예수님의 선, 예수님의 길, 예수님의 순종을 말합니다. 세상적 기준의 친절, 기부, 봉사 같은 ‘착함’이 아니라, 비움, 자기부인, 순종, 십자가를 지는 길, 이것이 ‘칼로스’입니다.

예수님이
“착한 일을 행하셨다”(행 10:38)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 착함은 세상이 칭찬하는 윤리적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신 생애 전체였습니다. 성도의 착한 행실은 바로 그 예수님의 착함이 우리 속에서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과 소금은 ‘
구별’인 것입니다. 소금은 부패와 구별되고, 빛은 어둠과 구별됩니다. 성도의 빛과 소금됨은 곧 세상과의 구별을 뜻합니다.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구별된 삶입니다. 만약 빛과 소금의 삶이 도덕적 선행의 범주에 머문다면, 세상의 훌륭한 인문학자, 철학자, 스님들도 모두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이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도에게만 주어진 부르심입니다.

그 구별은 어디서 나오나요? 십자가가 내 삶을 관통하고,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자리, 그곳에서 빛과 소금이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성도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빛은 어둠을 드러내고, 소금은 부패를 드러내기 때문에 세상은 그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구절을 많은 이들이 “세상이 우리의 선행을 보고 하나님을 칭찬한다”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건 예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세상은 성도를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세상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도 안에서 나타나는 순종과 인내와 십자가의 능력 자체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가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즉 성도가 감당할 수 없는 인내 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선택하고, 십자가적 순종을 지킬 때, 그 자체가 “
하나님이 일하시는 증거”가 됩니다.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설명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빛과 소금은 ‘
나의 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의 정체성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붙은 자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착한 행실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 되어야 하고 그 일은 언제나 십자가의 길 위에서 나타납니다.

세상은 그 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그러나 그 오해와 환난 속에서 더 깊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성도는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빛과 소금의 본질은 구별입니다. 그 구별은 세상적 도덕과 윤리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비움, 예수님의 순종, 예수님의 자기포기, 예수님의 십자가, 그 삶이 우리 안에서 재현될 때, 비로소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삶이 세상 앞에 드러날 때, 비록 세상은 성도를 미워하지만, 그 미움 속에서조차 성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이 성도만이 행할 수 있는 착한 행실입니다. 오늘도 우리 속의 ‘
’가 조금 더 죽고, 예수님이 조금 더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빛이 되고, 의식하지 않아도 소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