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3,16)
니고데모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지식도 있었고, 종교적 경건도 남들보다 훨씬 뛰어났으며,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권세와 명예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성경은 굳이 이 시간을 기록합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밤은 단순한 시간대가 아닙니다. 요한복음은 밤을 죄와 무지, 영적 어두움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지식으로 빛나 보였던 니고데모, 경건으로 빛을 발하던 니고데모 였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여전히 어둠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그 어둠 속으로 들어온 니고데모를 거절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준비한 대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칭찬을 건네며, 예의 바른 종교적 대화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칭찬을 전혀 받지 않으시고, 그의 근본을 건드리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보려면,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태어나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능동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출생의 주체는 아기가 아니라 어머니입니다. 예수님은 이 명백한 진리를 영적인 영역으로 가져오십니다. “니고데모야, 네가 지금까지 이룬 지식과 명예와 율법의 철저함은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다. 너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 하늘에서, 성령으로, 완전히 새로 창조되어야 한다.”
어쩌면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니고데모였을 것입니다. 그는 ‘거듭남’을 ‘자기개선’ 정도로 이해하고 싶어 했을지 모릅니다. 조금 더 기도하고, 조금 더 율법을 지키고, 조금 더 선을 행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니고데모야. 네가 쌓아온 모든 경건, 모든 지식, 모든 경륜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자기개선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구원은 성령께서 이루시는 전적인 은혜의 창조입니다.
예수님은 거듭남을 조금 더 설명해 주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은 정결과 씻음, 죄의 종결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생기와 새 창조를 나타냅니다. 즉, 거듭남은 ‘죽음과 부활의 사건’입니다. 죄에 대해 죽고,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스스로 이룰 수 없습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조금 더 착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꾸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가장 충격적인 해석을 이어서 주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해 독뱀에게 물려 죽어갈 때, 모세는 놋뱀을 장대 위에 달아 올렸고, 물린 자들이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야, 내가 그 놋뱀이다. 너희 죄의 독을 내가 대신 받아야 한다. 너희가 죽어야 할 자리에 내가 달려야 한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진노를 대신 받는 자리입니다. 죄의 저주, 하나님의 심판, 영원한 형벌을 예수께서 친히 받아내신 자리입니다. 사랑은 여기서 가장 찬란하게 빛납니다.
이 해석 위에서, 드디어 요한복음 3장 16절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은 이론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실체를 가진 행동이며, 자기 희생을 포함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독생자는 우리를 위해 밤으로 들어오셨고, 어둠의 세상 한복판에서 십자가로 들리셨습니다. 그 사랑을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미 심판 아래에 있는 우리를 건져 올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한 가지 결론을 내리십니다. 어둠에 속한 자는 빛으로 나오기를 싫어합니다. 빛 앞에 서면 자신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나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빛을 사랑하기 때문에 빛으로 걸어 나옵니다.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성령의 생명력에 자신을 맡기며 살아갑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밤을 밝히는 빛으로 그를 맞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오해하며 살아왔지만, 예수님은 어둠을 뚫고 오신 참 빛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빛으로 나오라.” 구원은 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성령의 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새 생명은 빛을 향해 걸어가는 삶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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