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창세기 9:8~17)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도, 땅도, 계절도, 낮과 밤도 모두 그분의 말씀으로 유지되며, 그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아 시대가 바로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에만 몰두했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만 살았습니다. 결국 그 상태는 ‘죄악이 온 세상에 가득함’(창 6:5)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드러났고, 하나님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드러났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창 6:8)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악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언약의 사람을 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단순한 배가 아니라 ‘언약’의 표지를 향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언약은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 중에도 은혜를 보존하는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 한 모든 생물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창 9:8~17). 이 언약은 “다시는 물로 모든 육체를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과, 그 약속의 증거로서 무지개를 주신 사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언약’이라는 말씀이 본문에 여러 번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그 언약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선언입니다.
무지개는 단지 아름다운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이 주신 ‘기억의 장치’입니다. 구름 가운데 무지개가 나타날 때마다 하나님은 “내가 세운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5)고 약속하십니다. 이 기억은 하나님 자신을 향한 약속의 신실함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늘 변하고 약하지만,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노아 언약의 선포 앞에는 제사의 장면이 있습니다(창 8:20~21). 노아가 정결한 짐승과 새로 번제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받으셨고 땅을 다시 저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신학적 단서를 줍니다.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면 인류는 영원히 심판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물의 향기를 통해 은혜를 베푸시고, 언약으로 지속적인 질서를 보장하십니다(심음과 거둠과 계절의 순환 등).
그러나 노아의 언약은 끝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언약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고 말합니다. 무지개 언약도 예외가 아닙니다. 무지개 아래에서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넓고 깊은 구속의 그림자로 완성됩니다. 노아가 제단에 드린 번제가 하나님께 향기를 드렸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 세상을 위한 완전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심고 거두고 먹고 마시는 모든 은혜는 단지 자연의 순환 덕분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끝과 관련하여 노아의 때를 예로 드셨습니다(마 24:37~39). 노아의 때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모른 채 일상에 파묻혀 살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고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지금’ 우리의 삶을 성찰하라는 긴급한 권면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자동으로 언약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갈 2:20)는 고백으로 나타나는 삶입니다. 자기 힘과 자원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불신자의 상태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몇 가지 묵상의 길을 제안합니다. 첫째, 언약을 기억하십시오. 무지개를 볼 때마다, 또는 계절이 돌고 일상이 계속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떠올리십시오. 그 약속은 우리의 행함을 정당화하지 않지만, 우리가 누리는 모든 질서와 축복이 하나님 은혜임을 깨닫게 합니다.
둘째, 속된 것에 붙들리지 마십시오.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에 ‘인생의 의미’를 걸고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열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우선순위로 삼으십시오.
셋째,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노아 언약의 그림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제도의 유지나 행위의 누적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그 십자가를 기억하고 그 은혜로 살기를 힘쓰십시오.
넷째, 예비된 사람으로 사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입니다. 깨달음과 회개의 삶, 그리고 이웃 사랑의 실천이 그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소망을 함께 갖게 합니다. 노아 시대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보여주지만, 그 심판 가운데 드러난 언약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져 있고, 그 언약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서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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