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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하늘의 색으로 말하는 하나님 - 치유의 성화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6.

중세까지 서양의 대부분의 그림들은 성경 이야기를 담은 성화였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화가들은 색 하나, 선 하나에도 깊은 신학을 담아냈습니다. 그들에게 색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초기 독일 세밀화인 문둥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장면에서도 이 색의 언어는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한 폭의 그림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예수를 통해 흘러 내려와 병든 자에게 닿는 장엄한 흐름이 색조를 따라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림의 가장 위쪽, 수평으로 펼쳐진 하늘은 연한 붉은빛을 띱니다. ‘
붉음’ 하면 우리는 종종 강렬함이나 긴장을 떠올리지만, 이곳의 붉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화가는 아주 부드럽고 따듯한 색조로 하늘을 칠했습니다. 마치 아침햇살이 막 피어오를 때 하늘 끝에서 번지는 연한 장밋빛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부드러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온유함을 상징합니다. 치유의 현장은 언제나 하나님의 성품에서 출발합니다. 이 그림은 그 사실을 하늘의 색으로 고백합니다. “
너희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시다.

하늘 아래로 이어지는 두 겹의 금빛, 밝은 금색과 어두운 금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금색은 고대와 중세를 막론하고 하늘, 영원, 거룩, 신성을 상징해 왔습니다. 성막과 성전이 금으로 꾸며졌던 이유도, 교회 천장과 모자이크가 금빛으로 장식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림은 이 금빛을 예수님의 발 아래 길게 깔아 두었습니다. 이는 주님이 걸어가시는 길이 영원의 길, 하나님의 빛이 머무는 길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하늘의 능력, 영원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서 계신 배경은 깊고 진한 파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파랑은 옛 미술에서 곧잘 믿음, 소망, 신적 신뢰의 색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우연한 기적이나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아들의 순종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 색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아버지의 뜻을 믿고, 아버지의 능력을 의지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사역이었습니다. 파랑은 그 신비롭고 깊은 믿음을 조용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 화가는 ‘
모성의 영역’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배치했습니다. 부드러움, 보호, 연약함을 품어주는 따뜻한 색조들이 자리하는 곳입니다. 이 영역 안에 나환자가 서 있습니다. 그는 연한 붉은 옷을 입고 있는데, 이 붉음은 피와 상처의 색이라기보다 연약함, 보호받아야 할 존재를 의미하는 색입니다. 그의 온몸에 난 종양 역시 같은 빛깔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화가가 나환자를 정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이 머물러야 할 한 인간으로 그렸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렇게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죄의 상처로 문드러진 우리를 향해 “
부정하다” 외치지 않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연한 파란 옷 위에 더 부드러운 붉은 색의 망토를 걸치고 계십니다. 이 두 색의 조합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림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파랑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고, 붉음은 인간을 향한 따뜻한 사랑입니다. 즉, 믿음 위에 놓인 사랑, 하늘의 뜻을 품고 인간을 품으시는 예수, 그분의 치유가
“믿음으로 역사하는 사랑”(갈 5:6)임을 색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환자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한 마디의 글 없이도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에게 오기 전에 이미 내가 너를 향해 다가왔다.”

그림의 왼쪽 상단은 ‘
부성의 영역’입니다. 그곳에서부터 오른쪽 아래의 ‘모성의 영역’까지 색들이 층층이 흐르듯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에서 내려오는 제자들 역시 한 사람 걸러 분홍빛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 색의 흐름은 마치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따뜻한 강물처럼, 부성(권위와 의지)에서 모성(돌봄과 긍휼)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예수님을 통해 단호한 의지에서 부드러운 긍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사랑이 함께 흘러 내려오는 것임을 말합니다. 그 강 끝에서 나병 환자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품을 맞습니다. 그 모든 사랑이 자기에게로 흘러들어오는 장면을, 그는 아마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단순한 색 배치 같지만, 중세 화가들은 색 하나하나를 오랜 신학적 전통과 상징으로 선택했습니다. 금색은 하늘, 영원, 신성, 파랑은 믿음과 소망, 붉음은 사랑, 긍휼, 인간성, 분홍은 부드러움, 모성, 온기, 동양 회화가 사물의 동음
(같은 발음이지만 의미가 다른 한자어<동음이의어>를 활용해 사물의 상징적 의미를 확장하는 방식을 의미함)을 통해 의미를 전달했다면, 서양의 성화는 색의 상징을 통해 신학을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방식 모두 꿈과 환상, 상징과 이미지, 영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깊은 통찰을 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를 소비하듯 보지만, 중세의 성화를 바라보며 신학을 깨달았던 이들처럼, 우리는 여전히 색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과 성령께서 꿈과 환상 속에서 색을 사용해 메시지를 주실 때, 이 중세의 전통을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금빛은 여전히 영광을 상징하고, 파랑은 여전히 믿음을 상징하며, 붉음은 여전히 사랑과 긍휼을 상징합니다. 성화의 색을 이해하면 우리의 영적 감수성이 깊어지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한 폭의 성화는 말합니다. “
하늘의 아버지의 부드러움이 예수를 통해 인간에게 흘러온다.” “하나님의 능력은 따뜻한 사랑이 되어 상처 입은 자에게 닿는다.” 색을 통해 드러난 이 치유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같은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상처에 손을 얹으시는 주님, 하늘의 금빛 영광을 가지고 오셔서 파랑의 믿음으로, 붉은 사랑으로,우리를 감싸 안으시는 주님을 말입니다. 색을 통해 눈을 여는 이 묵상이 당신의 영혼에도 작은 빛을 비추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