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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언약 - 덮어주시는 하나님, 덮어주지 않는 인간(노아언약)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0.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로마서 4:7~8)

창세기 9장을 읽다 보면 노아의 삶에 다시 찾아온 어둠 같은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방주에서 나와 새 인류의 아버지처럼 새로운 출발을 했던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잠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홍수 심판을 지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도 여전히 죄의 약함과 실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중심에는 노아의 실수보다 더 중요한 영적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함이 행한 행동, 그리고 셈과 야벳이 보인 태도, 그리고 그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노아가 취해 벌거벗은 모습을 본 함은 그 허물을 가려주지 않고, 오히려 형제들에게 알립니다. 성경은 이 짧은 한 마디 행동을 굉장히 무겁게 기록합니다. 왜일까요? 함은 아버지를 판단했습니다. 더 나아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방주에서 살아남은 것은 노아의 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덮어주심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입은 자가, 정작 자기 아버지의 허물을 덮지 않은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의 죄든지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것이 의로움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함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단순한 ‘무례’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받은 저주입니다.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덮어줍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덮어주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 은혜로 자신들의 허물을 덮어주신 사실을 다시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
덮어줌’의 행위를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애굽 종살이에서 벗어난 이스라엘도, 불평과 우상숭배로 범죄한 다윗도, 오직 하나님이 덮어주셔서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시편 78:38)

하나님이 모세에게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실 때, 돌판(율법)을 궤 안에 두고 그 위를 속죄소로 덮으라고 하셨습니다. 두 천사가 날개를 펴서 그 속죄소를 다시 덮습니다. 왜 덮습니까? 율법대로 심판하시면 이스라엘은 다 죽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은 어려서부터 악하고, 스스로 의를 만들어 의롭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덮으시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은혜가 없으면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도 하나님은 가죽옷으로 덮어주셨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힘으로 나뭇잎을 만들어 가렸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는 인간의 능동적 의였습니다. 가죽옷은 하나님이 주시는 수동적 의, 하나님의 은혜로운 덮어주심의 표였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 이야기에서 드러난 진리는 구약 전체와 신약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큰 강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덮어주시지만, 그 은혜를 깔보고 무시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머물게 됩니다. 히브리서도 이것을 경고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히브리서 10:26~29)

심판의 기준은 단순히 “
죄를 얼마나 지었는가”가 아닙니다. 누구나 죄인입니다. 노아도, 아담도, 다윗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덮어주심을 의지했습니다. 최종 심판의 기준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덮어주심 아래에 있었는가?

세상이 말하는 복은 땅에서 잘되는 것, 성공하는 것,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복은 대부분 사람의 생각과 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로마서 4:7) 죄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복이 아니라, 죄를 하나님이 가려주시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의 죄가 많을수록, 은혜는 더욱 빛납니다. 우리가 깊이 넘어질수록, 예수님의 십자가의 덮어주심은 더 큰 능력으로 경험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십자가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들고 갈 수 없습니다. 수양 천천이나 강수 같은 기름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업적, 도덕적 성취, 신앙의 열심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
주여, 내 허물을 덮어주옵소서.” 이 고백으로 십자가 아래에 서는 것입니다.

아담도, 노아도, 다윗도 이렇게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오직 같은 길로만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로 들어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벌거벗음을 가리시고,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노아의 가정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 ‘
덮어주심’의 주제는 성경 전체를 감싸는 하나님의 구속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실수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덮어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은혜를 아는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믿음의 행위는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가 그분이 나를 덮어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저주가 아닌 복을 누리고, 심판이 아닌 자비를 얻고, 부끄러움이 아닌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