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하박국 2:2)
그분이 일하셨던 흔적들은 늘 조용합니다. 크게 외치지 않고,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잊습니다. 아니, 잊는 데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오늘 마음을 울렸던 은혜도, 잠시 후면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 버립니다. 기억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삶입니다.
머릿속에만 남겨 둔 기억은 생각보다 연약합니다. 아무리 선명하게 떠오른 장면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왜곡됩니다. 반면 종이에 남긴 글씨는 투박하고 흐릿해 보여도 오래 살아남습니다. 직접 기록한 잉크는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물며,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는 길을 남깁니다. 그래서 생각에만 머무는 습관은 버려야 합니다. 특히 좋은 생각일수록, 은혜의 깨달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우리의 삶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꿉니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하고,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이유는 우리가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잘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친히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고,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우리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날 때에도, 삶이 어지럽고 마음이 혼탁할 때에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기록된 말씀은 흔들리는 기억을 붙잡아 주는 닻과 같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훗날 다시 읽을 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기록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기록하느냐는 질문입니다. 화려한 문장이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일어난 진실한 사건들이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나의 죄에 대한 솔직한 회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다는 고백. 이런 것들이야말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하나님과 나만의 아름다운 기록들입니다.
기억하면 소중해집니다. 아니, 어쩌면 소중한 것들은 자연스레 기억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하루는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이제 다짐해 봅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무심히 흘려보내던 습관을 버리기로 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천천히, 오래도록 기록해 보려 합니다. 흐릿한 잉크로 남긴 작은 기록들이 쌓여, 언젠가 다시 길을 잃었을 때 나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분명한 흔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리니 주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리이다”(시편 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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