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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혼인잔치의 비유 - 부르심 앞에 머뭇거리는 마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4.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마태복음 22:4)

해 질 무렵이면 어머니들이 골목에 나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밥 먹어라!” 그 부름은 언제나 따뜻했고, 사랑이 가득한 초대였습니다.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소리에 반색하며 뛰어가지만, 때로 어떤 아이는 말합니다. “안 먹어!

왜일까요? 그 아이는 딱지치기나 구슬치기에 마음을 빼앗겨, 진짜 필요한 초대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 작은 즐거움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그 놀이가 결국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른 채 말입니다. 이 어린 시절의 모습은 사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부르시지만, 우리는 삶의 일, 바쁜 마음, 자기만의 사소한 집착에 빠져 그 초대를 놓치곤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인 ‘
묵시’가 인간이 만들어낸 현실인 ‘역사’와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역사는 아담 이후 끊임없이 배설물처럼 어둠과 오물들을 쏟아낼 뿐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묵시는 그 더러움을 뚫고 들어와 결국 자신이 정하신 선을 이루십니다.

바로의 강퍅함을 묵시가 삼켜 출애굽의 길을 여셨습니다. 요셉 형제들의 악함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인간의 역사를 집어삼키고, 결국 하나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늘 반대 방향을 바라봅니다. 영원을 외면하고, 지금 보이는 현실에 집착하며, 작은 딱지와 구슬을 잡겠다고 하나님의 큰 밥상을 거절합니다. 오늘 본문의 혼인잔치의 비유는 바로 이 장면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임금은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준비합니다.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 두었습니다. 이 잔치는 은혜입니다. 누군가의 수고나 공로가 아닌, 왕의 결단과 사랑으로 마련된 자리입니다.

그러나 초청받은 이들은 오라는 말을 듣고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밭을 보러 가고, 다른 이는 장사하러 갑니다. 그들은 왕의 잔치보다 자신의 일, 자신의 소유, 자신의 열심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딱지에 빠져 어머니의 부름을 거절하던 아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더 크고 귀한 것을 앞에 두고도, 작은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어리석음입니다.

묵시의 초대에 응답하십시오. 결국 왕은 사거리의 모든 사람, 선한 자든 악한 자든 모두 불러 잔치를 채우십니다. 하지만 잔치에 참여했다고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자는, “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는 질문 앞에서 말문을 잃어버립니다.

부르심은 은혜이지만, 그 은혜 앞에서 머무는 것은 ‘
마땅한 예복’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합당한 자, 즉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가 결국 잔치에 남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잔치 자리로 오라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걸음은 여전히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밭, 나의 일, 나의 계획, 나의 취미, 나의 ‘
딱지와 구슬’, 이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는 역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그 위에 덮치고 들어와 결국 완성될 것입니다.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나는 그 초대에 응답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초대는 누구나 받았습니다. 그러나 초대에 응답한 사람, 은혜의 자리로 들어간 사람,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작은 집착이 하나님의 큰 잔치를 가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묵시가 현실을 삼키듯,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일상을 삼키도록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부르십니다. “
오라.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그 부르심에 기꺼이, 기쁨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