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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아브라함 언약 - 하나님이 홀로 지나가신 길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3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린도후서 1:20)

우리는 종종 믿음을 어떤 ‘
유산’처럼 생각합니다. 믿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야 믿음도 좋은 줄 압니다. 몇 대째 교회를 다녔는지, 집안에 목회자가 있는지, 신앙의 연륜이 얼마나 되는지를 은근히 자랑처럼 이야기합니다. 마치 믿음이란 집안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무엇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생각을 정면으로 부수어 버립니다. 아브라함의 출발이 그렇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
믿음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신앙 엘리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정말 믿음은 내 안에서, 내 열심에서, 내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인가?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
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붙들림’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흔히 ‘믿음의 영웅’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깊이 읽어보면, 그들은 스스로 위대한 믿음을 발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자기 인생의 계획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건(창 15:6)은, 아브라함이 무언가 대단한 신앙적 결단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하나님이 믿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얼마나 믿으려고 애썼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끝까지 붙드시는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이어서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창 15:7) 이때 아브라함은 질문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창 15:8) 이 질문은 의심이라기보다, 인간의 솔직함입니다. ‘하나님, 이 약속이 어떻게 보증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설명으로 답하지 않으십니다. 논리로 설득하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언약의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짐승들을 가져오게 하십니다. 삼 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 그리고 새들, 아브라함은 그 짐승들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입니다. 언약 당사자들이 쪼개진 짐승 사이를 함께 지나가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
만일 내가 이 언약을 어기면 이 짐승처럼 죽임을 당해도 좋다.” 이것은 피의 언약, 곧 생명을 건 언약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아브라함은 그 사이를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집니다. 잠이 ‘
’ 것이 아니라, 잠이 ‘임한’ 것입니다. 언약 체결의 현장에서 언약의 당사자처럼 보였던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가 져 어두울 때,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홀로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일방적인 언약, 하나님의 생명을 건 약속, 이 장면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복음의 예고편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
이 언약은 네가 지켜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네가 실패해도, 네 자손이 실패해도, 내가 내 생명을 걸고 이루겠다.” 하나님은 자신보다 더 높은 분이 없으시기에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언약하십니다. 그래서 이 언약은 일방적 언약입니다. 은혜의 언약입니다. 사람의 순종에 달린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린 약속인 것입니다.

약속은 늦게 이루어져도,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이 땅의 약속은 약 천 년이 지나 다윗 왕 때에 성취됩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지만, 약속은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 이후, 이스라엘은 다시 그 땅을 잃어버립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약속은 더 큰 방식으로 성취됩니다.

땅은 결국 ‘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그리고 분명히 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약속의 땅은 더 이상 지리적 공간이 아닙니다. 그 땅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
여럿을 가리켜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 약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을 실제로 완성하신 자리는 어디인가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행 20:28) 몰트만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서 “언약을 어기면 죽겠다”고 하신 분이 바로 그 약속대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붙잡았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끝까지 놓지 않으셨느냐를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자신의 생명으로 이루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
”가 되었습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