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처가 깊고 고통이 클수록 감정의 농도는 짙어집니다. 고통의 강도가 강할수록 사랑의 깊이와 능력도 증가됩니다. 용서도 상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팀 로런스는 상처가 클수록 용서를 통해 얻는 혜택도 커진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상처는 우리의 선택에 따르는 형벌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을 확인하는 척도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여러 전통에서 세상을 한데 묶 는 '접착제'로 묘사한 사랑의 힘은 이 미묘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은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와 일을 통해, 상실과 실패를 통해, 정체성의 최극단까지 자신을 밀어붙입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우리는 자문합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도 우리는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상을 초월하는 극악무도한 행위가 벌어 지는 현실 속에서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살해를 일삼고 인류를 지구상에서 말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과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일생을 함께한 사랑하는 사람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리는 상실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어떤 세상의 어떤 생명체도 겪어선 안 될 법한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렇게 자문합니다. "그들이 없는 세상을 어찌 살아간단 말인가? 이 아픔 속에서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때로 우리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과 시련으로 시험당합니다. 그럴 때마다 삶은 우리에게 그래도 여전히 사 랑할 수 있겠느냐고 묻지만, 우리가 해야 할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큰 목소리로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든, 그저 삶 속에서 그것의 의미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든 거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행복할 때나 힘들 때나 우리를 이끌어가는 힘이며, 인생의 가장 쓰라린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는 보증입니다. 사랑이 우리를 치 유하게 하려면 사랑을 우리 삶 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고대의 비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쓰라린 상처를 가장 심오한 지혜로 바꾸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상처는 고통스럽습니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비하게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깊은 통찰과 성숙은 그 상처를 통과하면서 주어집니다. 흉터는 부끄러움의 자국이 아니라, 치유의 증거이며 사랑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살아냈다는 표식입니다.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무릎 꿇게 하여 가장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합니다. “나는 왜 여전히 이 삶을 살아가는가?” “무엇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가?” 그 대답은 언젠가 반드시 ‘사랑’이라는 단어로 수렴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가장 혹독한 고통의 순간, 십자가 위에서조차 사랑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그 절규 속에는, 고통을 뛰어넘는 사랑의 위대함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어두운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랑이 우리 안에도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겪은 아픔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픔을 통해 더 깊은 공감과 용서, 그리고 진실한 관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가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기로 선택할 때, 우리는 단순히 이겨내는 것 그 이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상처를 통과하며, 다른 이의 상처를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그러니 당신이 어떤 고통 가운데 있든지, 한 가지는 잊지 마십시오. 당신의 아픔이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넓은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끄는 길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지만, 그 안에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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