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요한계시록 5:5~6)
우리는 종종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왜 악한 자들은 잘되고, 하나님의 백성은 조롱당해야 합니까?” “언제쯤 하나님 나라가 분명하게 드러나겠습니까?” 이 질문은 믿음이 약해서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진심으로 사모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깊고 아픈 탄식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흘린 눈물도 바로 그런 눈물이었습니다. 울고 있는 요한, 그리고 봉인된 책,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손에 들린 책을 봅니다. 안팎에 글이 가득 적혀 있고, 일곱 인으로 단단히 봉해진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재앙 목록이나 저주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재창조 계획, 곧 무너진 세상을 다시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는 구속의 비밀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책을 펼 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땅 아래에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요한은 크게 웁니다. 그 울음은 개인적인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 그 나라가 언제 옵니까?” “언제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집니까?” 라는 성도의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이 울음은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이 외친 기도와 같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또한 하박국과 예레미야, 이사야의 탄식과도 같습니다. 악이 판을 치는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리며 흘린 눈물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원한’이 아니라 ‘거룩’을 향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기도를 “향”이라고 부릅니다. 향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의 상징이며, 불 위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제물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기도가 “저 사람 망하게 해 주세요.” “원수를 갚아 주세요”라는 감정의 분출에 머문다면, 그것은 향기가 아니라 악취일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기도는 다릅니다. 그 기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단순히 악인을 멸망시키는 나라가 아니라, 의가 완전히 거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도는 이렇게 바뀝니다. “하나님, 저 악한 세상도 심판해 주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아니 그보다 더 깊이, “하나님, 제 안에 남아 있는 이 악함은 언제 사라집니까?” “언제쯤 저는 온전히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빚어집니까?” 이것이 향기 나는 기도입니다. 원수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자기 안의 죄를 슬퍼하는 기도,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기도,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이 울고 있을 때, 한 장로가 말합니다.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다.”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위엄 있고 강력한 사자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모든 원수를 단번에 제압하는 압도적인 왕의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실제로 본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가 본 분은 도살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었습니다.
사자라고 들었는데, 보니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것도 상처 입고 죽임당한 양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핵심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십자가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승리는 세상의 승리와 다릅니다..세상은 힘으로 이기는 것을 승리라 말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내어줌으로 이기는 것을 승리라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일곱 뿔을 가지신 분, 곧 완전한 능력과 승리를 소유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능력을 휘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셨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패배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바로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사자처럼 군림하라고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자의 생명을 가진 어린 양처럼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억울해도 참고, 손해를 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조롱을 받아도 평안을 잃지 않는 삶, 세상은 그런 삶을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도살당한 양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세상을 이겼다.”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믿음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더 나은 부활을 바라보며 지금의 고난을 견뎌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책은 이미 열렸습니다. 일곱 인은 이미 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습니다. 눈물 속에서도 소망을 놓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향기로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우리 안에 남은 악을 제거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고 기억합니다. 사자이신 분은 지금도 어린 양으로 서 계십니다. 그 길이 곧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도살당한 어린 양의 모습으로 나타난 유다 지파의 사자를 따라 그렇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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