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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일곱 인으로 봉한 책, 그리고 우리에게 열리는 복음의 현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께서 그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요한계시록 5:9~10)

사람들은 종종 “
너무 많이 알면 골치 아프다”라고 말합니다. 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성도들이 성경을 깊이 알기 시작하면 불편해진다고 말합니다. 질문이 많아지고, 분별이 생기고, 더 이상 말 한마디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소한만 가르치자”는 결론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랑일까요? 만약 우리가 시한폭탄이 설치된 도시에 살고 있다면, 누군가는 그 폭탄을 해체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없고, 실패하면 모두가 죽습니다. 그 절박함으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편함을 위해 가르침을 줄이는 것은 양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은 바로 그런 절박한 복음의 중심부를 우리 앞에 펼쳐 보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손에 들려 있는 한 책을 봅니다. 그 책은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그 책을 열 자가 없습니다. 그 순간 요한은 슬피 웁니다. 왜일까요? 그 책이 열리지 않으면, 역사는 의미를 잃고 고통은 해석되지 않으며, 구원은 확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로 중 하나가 말합니다. “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다.” 그리고 요한은 사자가 아니라 죽임당한 어린 양을 봅니다. 이 장면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꿰뚫는 핵심입니다. 역사를 여는 열쇠는 힘이나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저주나 재앙의 목록이 아닙니다. 영화나 소설이 그려내는 것처럼, 인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괴물이 튀어나오는 마술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구속을 거쳐 완성에 이르는 하나님의 이야기, 곧 복음입니다.

이 책은 이미 구약에서 등장합니다. 다니엘에게 주어졌던 봉인된 책입니다. 그 내용은 메시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심판과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
마지막 때까지 봉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열릴 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오직 죽임당하신 어린 양만이 그 책을 취하시고 인을 떼십니다. 유언장은 작성자가 살아 있을 때는 효력이 없습니다. 반드시 죽음 이후에야 실행됩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피 흘리지 않으셨다면, 복음은 선언일 뿐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
왜 복음의 책이 열리는데 전쟁과 기근과 재앙이 나타나는가?” 이 질문은 복음을 절반만 이해했을 때 나오는 질문입니다. 복음은 항상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가져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지만, 동시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같은 태양이 밀랍을 녹이고 진흙을 굳게 하듯, 같은 복음이 어떤 이에게는 회개의 은혜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완고함을 드러내는 심판이 됩니다. 그래서 인이 떼어질 때마다 세상은 흔들립니다. 전쟁, 기근, 질병, 자연의 파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회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거부한 세상이 스스로 무너져 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같은 재앙이 임해도 반응은 다릅니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회개합니다. 어떤 이는 주먹을 쥐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같은 병, 같은 사고, 같은 상실 앞에서도 어떤 이는 “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고백하고 어떤 이는 “왜 나에게 이런 벌을 주느냐”고 소리칩니다. 차이는 사건에 있지 않습니다. 해석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의 현실을 하늘의 신분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은 이미 승리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흰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어린 양을 찬양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눈물의 역사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유혹은 강하고, 고난은 실제이며,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
너희가 낙심할까 봐.” “너희가 포기할까 봐.” 우리에게 계속해서 천상의 현실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현실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불 속을 지나가지만, 타지 않습니다. 심판의 파도 속을 걷지만, 삼켜지지 않습니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건져집니다.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십자가를 향해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현실이 어두울수록, 이미 확보된 승리를 기억하십시오. 고난이 깊을수록, 어린 양의 보좌를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완성은 이미, 어린 양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