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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지금, 찬송하십시오 - 이미 이긴 나라를 사는 사람의 노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

“새 노래를 노래하여 이르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요한계시록 5:9~10)

우리는 흔히 계시록을 읽을 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
지금은 몇 번째 인이 떼어진 시대일까?” “이 재난은 혹시 말세의 징조 아닐까?” 그러나 이런 질문들 속에는 한 가지 공통된 오해가 숨어 있습니다. 계시록을 시간표로 읽으려는 습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려주는 예언 달력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나라를, 아직 완성으로 가는 이 땅에서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하늘의 시선인 것입니다.

인은 차례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전쟁과 기근, 질병과 재해는 노아의 시대에도 있었고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있었고 모세의 시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인들은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씩 차례로 넘어지는 사건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타락한 세상 전체에 동시에 드리워진 현실이며,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그 강도가 짙어질 뿐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
이게 몇 번째 인인가?”를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현실 속에서 나는 누구를 바라보는가?”를 묻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이미 찬양이 울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요한은 놀라운 장면을 봅니다. 죽임당하신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분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는 순간, 하늘에서는 즉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아직 인이 하나도 떼어지지 않았는데, 아직 심판은 시작되지 않았는데, 아직 세상은 그대로인데 하늘은 이미 노래합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승리는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의 십자가는 2000년 전에서 시작된 사건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듯 “
창세 전에 죽임당한” 사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순간,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교회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는 죽임을 당하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 노래는 상황이 좋아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완성되었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찬양이 어려울까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의 교회는 이미 완성된 자들이지만, 우리는 아직 완성되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마음먹으면 삶은 더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불편해집니다. 정직하려고 하면 손해를 봅니다. 침묵하려고 하면 억울합니다. 사랑하려고 하면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튀어나옵니다. “
이게 맞는 길인가?” “정말 하나님이 계시긴 한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안 변할까?” 찬양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너무 정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찬송하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이 땅에 남겨질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
아버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악에 빠지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그 ‘지킴’은 편안하게 감싸 안는 보호가 아니라 가시로 길을 막는 보호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갈 때 하나님은 실패하게 하십니다. 막히게 하십니다. 넘어지게 하십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빚기 위함인 것입니다.

한 성도가 인생의 큰 시련을 겪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목사님, 이번 일로 하나님께 원망보다 감사가 나옵니다. 제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 무엇을 향해 자라가야 하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한 청년은 일이 잘 풀리는 순간에 오히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성공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면 차라리 망하게 해 주세요. 저에게는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 노래인 것입니다. 형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성도의 기쁨은 잘됨과 안됨에 있지 않습니다. 채워짐과 비워짐에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거룩하게 완성될 것이라는 약속 그것 하나면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미래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의 무리, 새 노래를 부르는 완성된 교회, 지금의 실패는 그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지금의 눈물은 그날의 찬양으로 바뀔 것입니다.

관우가 적토마를 얻고 기뻐한 이유는 편안함 때문이 아니라 주군에게 더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모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길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간다면 그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찬송하십시오. 아직 변하지 않은 나를 보며가 아니라 반드시 완성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아직 인생이 풀리지 않았어도 이미 어린양이 책을 받으셨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는 찬양이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부르는 이 노래에 하늘의 네 생물이 응답할 것입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