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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삶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 무너짐 속에서 다시 고백하는 용기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8.

삶을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아름답게 들립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이 진짜 의미를 갖는 순간은, 삶이 우리에게 등을 돌릴 때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일 때, 눈앞에서 소중히 붙들던 것들이 불탄 종이처럼 바스라져 손끝에서 흩어질 때, 그 연기와 재가 목을 메이게 할 때, 바로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사랑한다는 말의 깊이를 배웁니다.

어떤 날은 슬픔이 조용히 다가와 우리 곁에 앉습니다. 마치 오래된 그림자처럼, 혹은 우리 몸에서 떼어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장기처럼. 슬픔은 우리 곁에서 말없이 머물다가, 어느새 숨을 쉬는 것마저 버겁게 만듭니다. 공기는 무거워져 물처럼 가라앉고, 폐는 제 기능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아가미가 있다면 더 나았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스칩니다. 그만큼 우리는 고통의 무게에 눌린 채 하루를 지탱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묻습니다. “내 몸 하나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을까?” 마치 거대한 슬픔이 우리 위에 올라타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운 순간이 있습니다. 기댈 곳도, 붙잡을 만한 이유도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런 절망의 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삶을 향해 조용히 손을 뻗습니다. 살아 있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살아낼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본능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발견되는 어떤 낮고 작은 용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듯이 삶을 부여잡습니다. 삶은 미소도, 매혹도, 화려함도 없이 그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감동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밉고, 조금은 낯설고,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얼굴입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우리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너를 받아들일게. 너를 다시 사랑할게.” 이 말은 결코 호기로운 승리의 선언이 아닙니다. 좌절의 끝자락에서 건져 올린 작은 고백이며, 무너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진실입니다.

삶이 우리를 배반한 것처럼 느껴질 때조차, 우리가 삶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조용히 되뇌는 것이 바로 ‘삶을 사랑하는 것’의 진짜 의미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기쁨의 순간에만 주어지는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어둡고 가장 무너진 자리에서, 손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마지막 남은 의지의 조각으로 삶을 붙드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붙드는 손아귀가 때로는 떨려도 괜찮습니다. 다시 사랑하겠다는 고백이 미약해도 괜찮습니다. 삶은 화려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그 단순한 동의와 포기가 아닌 수용을 기다릴 뿐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삶이 버겁다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것처럼 삶을 잠시 붙잡아 보십시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해 보세요. “그래, 너를 받아들일 거야. 너를 다시 사랑할 거야.”

그 고백 하나로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일은, 그렇게 다시 시작됩니다.